의술이 신통치 못했던 시절, 결혼한 여성들에게 출산은 실로 생사를 넘나드는 어려운 통과의례였다.

분만하는 순간의 고통을 "천정과 방바닥이 맞닿는 순간"에 비유한 속담이라든지, 초상집처럼 저승사자(使者)에게 먹일 사자밥을 미리 지어놓고 산고(産苦)를 넘겼다는 산속(産俗)은 분만이 자연의 섭리라고는 해도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모험이었던가를 실감케 한다.

초산의 어린 색시는 죽는 줄 알고 정신이 없었겠지만 몇번 아이를 낳은 임부도 고통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산고가 어찌나 심했던지 갑자기 남편이 미워져 "얘, 너희 아버지 짚신을 얼른 대문 밖에 내다버려라" 했다가 순산을 하면 "얘, 그 짚신 다시 들여다 놔라" 했다는 옛 얘기도 있으나 그런 볼멘 소리를 할 여유라도 있는 산부가 얼마나 됐을까.

의사나 조산원이 없었던 시절이었던 만큼 분만을 거드는 사람은 대부분 친척중 경험이 많은 노파였다.

그들이 분만을 거드는 방법도 경험이나 민간신앙 민간요법을 따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우선 임부의 머리를 감기고 그 한 가닥을 돌려 입에 물렸다.

삼신할머니에게 흰밥과 미역국을 지어 올리는 것은 빼놓아서는 안되는 속신이었다.

난산일 경우 소의 안장위에 임부를 태우기도 했고 산열이 심하면 머리 가슴에 찬물을 끼얹어 열이 내리도록 했다.

진통끝에 분만하면 산모는 고통이 남기고 간 만족감을 만끽한채 깊은 잠 속에 빠졌다.

수백년전이 아니라 지금 중년쯤 된 이들의 어머니 할머니의 이야기다.

지난해 우리나라 임신부의 제왕절개 분만율이 세계 최고인 43%에 달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미국의 2배나 되는 높은 수치다.

임부의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신체미용상의 고려, 의료수가를 의식한 의사들의 권유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제왕정개분만은 합병증이 많고 사망률도 자연분만의 4배나 된다고 한다.

제도개선이나 의사윤리의 확립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성들 자신의 건강에 대한 자각과 산고를 외면하지 않는 출산문화개선 의지가 앞서야 해결될 문제라는 점은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