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발명가인 루돌프 디젤은 1858년 3월 18일 파리에서 피혁 가공업체를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루돌프 디젤은 12세 때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 사는 백부의 양자로 들어간 후 뮌헨 고등공예학교를 졸업한다.

졸업 후 암모니아 냉동기의 발명으로 알려진 린데 박사가 파리에 설립한 냉동기회사에 취업하면서 열학과 인연을 맺게 된다.

디젤은 디젤엔진의 발명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탁월한 열학자이자 미술품 감정가,언어학자,사회이론가이기도 했다.

1884년 디젤은 "증기기관의 증기 대신 가열한 암모니아 증기를 쓰면 열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디젤은 1885년 실험실을 파리에 세우고 고통스러운 특수엔진의 발명을 위한 13년간의 연구에 들어간다.

그러나 암모니아는 냄새가 심하고 금속을 부식시키므로 공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디젤은 압축된 공기에 연료를 분사하면 자연 착화가 발생한다는 원리를 이용한 엔진을 고안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저절로 불이 붙을만큼 공기를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1893년 디젤은 연구비를 지원해줄 회사를 찾아다닌 끝에 아우구스부르크 기계제작소(나중에 MAN사에 합병)로부터 실용화에 성공할 경우 판매권을 양도한다는 조건으로 후원을 받게 됐다.

그 해 8월10일 디젤의 최초모델을 선보이게 된다.

그러나 휘발유를 사용한 첫 시험은 폭발음과 함께 실패로 끝났다.

그후 디젤은 수많은 시행착오끝에 1894년 2월 드디어 엔진을 개발해 1896년 12월31일 두번째 모델의 시운전에 성공한다.

그는 이 엔진모델에 대한 특허를 얻었고 그의 아내의 권유에 따라 엔진이름을 "디젤엔진"이라고 붙였다.

당시 디젤은 MAN사의 독점계약을 깨고 다른 회사와도 엔진계약을 맺어 1898년 뮌헨 만국박람회장에는 4개 회사가 디젤엔진을 전시했다.

디젤엔진은 기존의 휘발유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경제형 엔진으로 알려지면서 유럽과 미국 사업가들이 몰려 광산공장,선박,기차,건설장비,트랙터용 엔진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루돌프 디젤은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가솔린엔진과 증기엔진 제조업자들간의 갈등과 회사내 간부들의 부정부패 등으로 인해 디젤의 정신착란증이 심해졌다.

그는 1913년 9월 영국의 디젤엔진 공장의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선을 타고 도버해협을 건너던 중 실종됐다.

디젤엔진을 탄생시킨 디젤은 신기술이 활짝 꽃피는 것을 보지도 못한 채 1913년 9월 29일 55세의 나이로 비명횡사했다.

지금도 그의 죽음은 온갖 추측과 의문이 나돌뿐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디젤엔진은 루돌프 디젤 사망후 10년도 채 되지 않아 세계 최고의 자동차 업체인 메르세데스 벤츠에 의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 손을래 수입자동차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