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동부그룹 회장(56)의 20년 꿈이 이뤄졌다.

3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 도시바 본사에서 한신혁 동부전자 사장과 야스오 모리모토 도시바 반도체부분 사장간에 메모리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제휴 계약이 체결되던 같은 시각.

서울 을지로3가 동부그룹 사옥 7층 집무실에서 김 회장은 비서로부터 계약식 보고를 받고 "해냈어"라며 감개무량해했다고 한다.

김 회장으로선 두번째 승부수를 이뤄낸 셈이다.

첫승부는 중동건설.

김회장은 지난 1969년 내수위주로 사업을 해오던 부친 김진망 옹(82)의 만류를 뿌리치고 건설업(동부건설의 전신인 미륭건설)에 뛰어든 뒤 70년대 중동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해외건설이 한풀 꺾이기 시작하던 지난 1980년대초 김 회장은 중동에서 번 "오일달러"로 2차 사업전환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반도체사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동부는 지난 83년 미국 몬산토사와 제휴,반도체 간접소재인 실리콘웨이퍼를 생산하는 (주)코실을 세웠지만 여의치 않아 6년만에 지분 51%를 LG에 넘겼다.

그 이후 10여년에 걸친 준비작업 끝에 지난 97년11월 IBM과 제휴,메모리인 2백56메가D램 사업진출을 공식발표까지 해놓은 상황에서 외환위기를 맞아 중도 포기를 해야했다.

설상가상으로 김 회장은 97년말 대선때 한나라당 후보에 선거자금을 지원한 것이 꼬이면서 작년 9월까지 해외에 장기 체류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로선 동부의 반도체 사업은 완전히 물건너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김회장은 해외체류기간 중 오히려 반도체사업에 대한 집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반도체 회사를 찾아다니며 제휴선을 찾았다.

사업분야도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간에 빅딜이 이뤄진 메모리에서 비메모리로 방향을 틀었다.

올 봄부터는 동부전자 반도체사업팀이 일본에 건너가 도시바와 공정기술 이전 및 자본투자 등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해 마라톤협상에 들어갔다.

동시에 30만평의 충북 음성 공장 신축현장에선 97년 5월 이후 멈췄던 설비 공사를 지난 4월 3년만에 재개했다.

이로써 동부는 주력업종인 전통제조업.건설.금융 등 세가지에 디지털시대의 성장주력인 반도체를 추가하게 됐다.

동부전자를 국제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키워 미국 나스닥에 등록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김 회장은 동부한농화학을 주축으로 바이오 분야에서 제3의 승부를 걸 것으로 재계 분석가들은 전망한다.

<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