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의 고전적 귀감이랄 수 있는 심청이나 성춘향은 소설속에서 얼굴이 아름답고 요행과 부덕(婦德)이 출중하며 재질이 비범하고 문필도 유려한 인물로 묘사돼 있다.

인현왕후 민씨도 마찬가지다.

용모의 아름다움은 각기 ''꽃중의 모란''이니''수중의 연꽃''이니 ''눈속의 매화'' 등으로 표현된다.

흔히 ''겨울의 잣나무''로 묘사되는 절개는 선인들이 생각했던 바람직한 여인상이 어떤 것이었나를 되짚어 보게 한다.

아름다운 미모, 현숙한 부덕, 탁월한 재질과 학식은 선인들이 생각했던 이상적 여인상의 3가지 조건이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은 제도적 결함은 여성은 미모와 부덕만을 갖추면 된다는 식의 관념을 낳았다.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해야 할 일의 구분이 명확한 성역할 분담이 고착된 것은 이처럼 뿌리가 깊다.

교육부가 ''남녀차별 금지법'' 시행 1주년을 맞아 전국 9백79개 여자 중/고등학교의 교훈을 조사한 결과 33%인 3백24개교가 아직 ''여성'' ''아름다움'' ''순결'' ''몸매'' ''부덕'' 등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줄 수 있는 단어나 내용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다음달부터 금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각 학교가 교육목표로 내세운 교훈이 남녀평등 교육의 이념을 어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경건한 여성이 되자, 부덕을 높이자''는 교훈이 있는가 하면 ''여성의 참 모습을 찾자'' ''착한 마음씨, 알뜰한 솜씨, 아름다운 맵시''라는 교훈도 있다.

용모의 아름다움과 부덕을 강조하는 조선조 전통이 아직 이어지고 있는 탓일까.

교육심리학자 산드라 벰(Sandra Bem)은 앞으로는 남자건 여자건 양성화(兩性化)되어야만 성역할 고정화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요즘 젊은 맞벌이 부부중에는 남편이 밥짓기 빨래 시장보기까지 하는 경우도 많다.

이것도 우리가 양성화돼가는 증좌의 하나다.

여학교라고 해서 여성스러움만 강조하는 교훈을 내세우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생각이 든다.

남학교의 경우도 다를 것이 없다.

허겁지겁 시행한 ''남녀차별 금지법''의 실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