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휴전선이 무너지고 통일이 된다면 정부에서 가장 먼저 취해야할 조치는 무엇일까.

남북정상회담 열흘전쯤 저녁 먹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던진 말이다.

우선 남북한 토지를 통일시점에서의 소유권자에게 귀속시키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분단 이전의 소유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숱한 분쟁이 빚어지고 그런 토지소유 불안정상태가 공장건설 등 투자장애요인이 돼 결과적으로 경제통합 그 자체를 지연시키는 꼴이 된 동서독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북한난민들의 대량 유입을 막기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데는 이론이 없었으나 방법론에 들어가서는 논란이 없지만도 않았다.

실질구매력에 비해 동독 화폐를 지나치게 우대한 동서독 화폐 등가교환과 같은 방법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동독지역 임금을 한꺼번에 몇배로 올리는 꼴이 됐고 그래서 동독지역 기업의 무더기 도산이 빚어져 두고두고 문제를 남기지 않았느냐는 얘기였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보는 시각이나 그 의미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일 수 있다.

분위기를 일신했다는 점 만으로도 대성공이라고 평가해야 한다는 시각은 설득력이 있고 일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기자로서 나는 아직 다소 성급한 감이 있는 성과에대한 평가보다 이번 회담으로 통일을 위한 실질적 방법이 경제외에는 달리 없다는게 분명해졌다는 점을 특히 주목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정부의 햇볕정책과 현대의 금강산사업 등이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또 공동선언문은 교류와 협력을 통해 궁극적인 결과로서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의 의미가 더욱 각별해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이산가족.장기수 문제나 문화.체육교류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단발성 이벤트적인 그런 교류보다 대북한투자 등 일단 시작되면 영속성을 지니게 마련인 경제협력이 더욱 지대한 파급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바로 그런 점에서 남북경협의 중요성이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미부여가 자칫 성급함으로 이어져서는 오히려 통일에 역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선 안된다.

언제나 이해다툼이 빚어질 수도 있는게 경제사안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남북간 투자보장협정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것이 현행 법률체계상 가능하고 또 과연 실효성이 담보되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우측이 50%를 투자한 남포공단 민족산업총회사의 경우 북한측이 초청장을 보내주지 않아 1년5개월째 우리측 경영진 및 기술자들이 가지도 못하는게 현실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대규모 대북투자가 이루어진 뒤에 이런 일이 빚어진다면 남북경협사업이 그 본래 의도와는 달리 남북간 불협화음을 촉발하고 새로운 긴장을 낳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북한 SOC(사회간접자본)건설등 대규모 투자는 미국 일본 등의 자본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불능력이 없는 북한을 도와주기 위해서도 그렇고 자본주의적 관행에 어두운 북측의 "무지"등으로 인한 불협화음에 대한 안전판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ADB(아시아개발은행) IBRD(세계은행)등 국제적인 개발기구에 북한이 가입하도록 종용하고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은 바로 그런 측면에서 우리 정부가 서둘러야할 일이다.

남북경협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통일비용을 미리 조금씩 지불하는게 남북경협사업이고 보면 재정부담분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불만을 가져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위한 남북경협사업이 특수나 대호황을 낳을 것으로 성급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통일이 남북간 경제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는 점을 되새기면 통일비용을 남쪽에서 대거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순리다.

피란 나올때 갖고 나왔던 땅문서가 휴지화되는 형태가 될지,임금을 낮추는 형태가 될지,세금을 더 내는 형태가 될지는 속단할 일이 아니지만 우리 모두 통일비용을 내야 한다는 인식만은 분명히 갖고 있어야 한다.

통일이 경제적 득실에 관계없이 반드시 실행돼야할 우리들의 소원인 이상 그런 인식은 당연한 도리다.

이번 정상회담은 통일을 향해 경협활성화의 주춧돌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시작인 셈이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 좀더 차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