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Das Beste,oder Nicht)"

고틀립 다임러는 1834년 3월 17일 독일 남부 스투트가르트 부근 숀도르프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계에 남다른 흥미를 보였던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총포공장에서 도제생활을 했고 다시 스투트가르트의 공작기계 공장에서 3년간 일했다.

그 후 여러 기계 회사의 기술 책임자를 지냈다.

38세 되던 1872년 다임러는 오토기계회사의 기술이사로 부임하여 설계주임으로 함께 온 마이바하와 함께 내연기관의 개발에 온 힘을 쏟는다.

두 사람은 당시 이론만 나와있던 엔진을 실용화하기 위해 4년간 정열을 쏟은 끝에 마침내 "오토엔진"을 만들어냈다.

증기자동차에 대신할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48세인 1882년 마이바하와 함께 칸슈타트에 공장을 설립,연구를 거듭한 끝에 고합 점화식 휘발유 엔진을 완성시켰고 1886년에 이 엔진을 얹은 오토바이를 만들어 직접 시험 주행을 했다.

1년 뒤 마차를 개조해 휘발유 엔진을 달았다.

네 바퀴 자동차를 완성한 것이다.

이 자동차는 4백69cc엔진으로 6백50rpm에서 시속 11.8km로 달렸다.

현재 스투트가르트 다임러 박물관에 그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다임러는 자신이 개발한 엔진을 자동차 뿐만이 아니라 선박과 항공기에도 응용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다임러 회사의 엠블럼인 세꼭지 별은 바로 육.해.공 세 분야로 뻗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다임러는 자동차보다는 오히려 엔진 자체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다임러에게 자동차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권한 사람이 그의 충실한 협력자 마이바하였다.

다임러는 1889년 1호차의 개량에 힘을 쏟아 개량형을 만들어 그해 열린 파리 박람회에 출품했다.

엔진은 V형 2기통 5백65cc.이 차는 특히 엔진이 호평을 받아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자동차 메이커였던 푸조와 파나르 르바소르가 이 엔진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듬해 다임러 엔진을 얹은 프랑스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임러는 1890년 정식으로 다임러모토회사를 세웠다.

다임러는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엔진의 고성능화와 디자인 등의 개발에 주력을 했다.

1896년 2기통과 4기통짜리 피닉스엔진을 개발했다.

사업도 독일을 넘어 영국과 오스트리아에 현지 법인을 세울 정도로 커졌고 마침내 20세기 모터리제이션의 개화를 앞둔 1900년 3월 6일 다임러는 6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손을래 < 수입자동차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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