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독점전재 ]

50년 이상 적대관계가 지속돼온 남북한의 정상이 마침내 만나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아시아지역을 갑자기 안전한 지역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그 만남 자체로도 대단한 일이다.

남북한은 냉전이 낳은 형제다.

한쪽은 민주주의 국가로 보다 부유하고,다른 쪽은 공산주의와 봉건제도가 혼합된 채 쇠락하고 있다.

이들은 외적인 차이만큼이나 서로 많은 이견들을 가지고 있다.

두 나라는 그동안 도발과 위기 사이를 오갔고 한반도는 몇차례 전쟁 직전까지 몰렸었다.

이러한 이들의 관계가 정상회담으로 쉽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한 주재 외교관들은 남북한의 과거 적대관계에 비춰볼 때 상황이 이토록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94년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의 사망으로 정상회담이 성사직전에 취소된 적은 있지만 김일성 부자는 그동안 핵무기로 전환이 가능한 플루토늄을 생산,한반도의 핵위기를 조장했다.

이후 두개의 원자로를 제공,핵무기 생산을 방지하자는 미국 및 한국과의 핵협상을 북한은 여러차례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

지난 98년에는 일본 상공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해 협상을 1년이나 정체시켰다.

남북한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도 그간 양국이 합의발표한 성명내용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남북한은 지난 91~92년 남북기본합의서등 합의내용을 통해 우편교환에서 핵시설 상호조사까지 모든 사안에 합의했지만 실제로는 한번도 이행되지 않았다.

38선 너머 가족의 생사를 알고 싶어하는 한국의 이산가족들은 아직도 중국이나 일본에 있는 북측 브로커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다.

이웃 국가들에 대한 북한의 군사위협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98년부터 김대중 정부는 경제 관광교류가 얼어붙은 양국의 정치 관계에 봄바람을 불게할 것으로 판단,햇볕정책을 추진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이 비록 더디더라도 지속적인 양국간의 화해무드 조성에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문제는 남측이 내민 손을 북한이 거리낌없이 잡아줄 것인가에 달렸다.

최근에는 낙관적인 신호들이 잇달았다.

북한은 이탈리아 호주 필리핀 일본 등 여러 나라들과의 외교관계를 회복시키고 있다.

다음달에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지역포럼(ARF)에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은둔자에서 외교가로 변신하기에 앞서 지난달 돌연 베이징을 방문했다.

그동안 남북한 관계와 핵문제를 포함해 미국 이외의 어떤 나라와도 협상하지 않으려 했던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나선 것은 마침내 김대중을 합법적이고 동등한 파트너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회담에 나선 김정일은 무엇보다 그 자신과 북한의 존립을 우선순위에 둘 것이다.

한국의 경제원조를 최대화시키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한 쪽의 힘만으로 화해를 이뤄낼 수는 없다.

남북대화가 이번 회담 이후 지속되더라도 양측은 넘어야 할 험난한 산들을 눈앞에 두고있다.

이산가족과 경제원조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군사지역으로 만들어온 군사적 위협을 어떻게 줄여나갈지도 풀어야 할 숙제다.

언젠가 두 나라가 통일될 날이 올 것이다.

통일이 북한의 붕괴로 폭력이 오가는 속에 갑자기 이뤄지든,반대로 양측의 꾸준한 협상을 통해 평화롭게 이뤄지든,이번 회담은 그 역사의 첫 장으로 장식될 것이다.

정리=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6월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