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 < 소설가 hannak3@hanmail.net >

요 며칠 시골에서 쉬던중 읍내에 나간 길에 낡아빠진 건물의 목조계단을 밟고 2층 미장원에 들어가 봤다.

도무지 솜씨라고 낼까 싶은 동네 미장원이다.

"어서 오세요"

잡지나 뒤적이던 시골 미용사는 동짓달 꽃 본 듯 반색을 한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는 아무렴 어떠냐는 듯 대답한다.

"뭐 최선을 다해주세요"

창 밖으론 신록이 우거지고 실내엔 70년대에나 들었을 성싶은 가요가 흘러나온다.

6월의 한낮이다.

눈꺼풀이 반은 내려와 있는 나는 코끝에 감겨오는 파마약 냄새를 맡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다.

춘삼월 춘곤증처럼 혼곤한 졸음-.

그 달콤한 졸음은 나를 초등학교 시절 동네 미장원으로 데려간다.

실내에 갖가지 머리크림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구형 라디오에선 정훈희 노래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용사 보조는 제 흥에 겨워 폼을 잡으며 따라 부르고, 주인 미용사는 바짝 달궈진 고데기로 처녀 고객의 머리를 공작새처럼 부풀리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면 어린이답게 얌전히 앉아 있던 나는 눈썹 위에서 사각거리는 가위질 소리를 듣다가 어느 샌가 봄날 고양이처럼 혼곤히 조는 것이다.

그러다 살포시 실눈을 뜨면 벽에 붙은 전설적인 미인들 사진이 영화 포스터처럼 들어온다.

그레타 가르보,마릴린 먼로,페이 더나웨이,그레이스 캘리...

사각사각 경쾌한 가위소리와 풋내기 미용사가 따라 부르는 70년대 노래,벽에 붙은 오래된 미녀 사진들,지지직 머리칼을 태우는 고데기 냄새가 그로부터 이십 몇 년이 지나 바닷가 미장원에 앉아있는 나를 꿈같은 졸음에 빠뜨린다.

"자아 다 됐어요. 너무 잘 나왔어요"

방금 머리를 감긴 미용사는 자신 있게 선언한다.

나는 졸린 눈을 껌뻑이며 거울을 들여다본다.

촌스런 파마머리 아줌마 하나가 거기 앉아 있다.

댁은 누구슈?

하지만 미장원을 나올 때 나는 오래 전 풋내기 미용사처럼 70년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그리고 삶에 지치고 피곤한 어느 날 오래된 시골 미장원을 찾아들어 풋내기 미용사의 손에 머리를 맡긴채 꾸벅이며 졸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이십 몇 년 짜리 달콤한 졸음과 추억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