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양호가 "조선인은 왜 차를 마시지 않느냐"고 묻자 선조는 "조선 습속이 본래 차를 마시지 않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선조실록"에 적혀있는 이야기다.

이미 그 이전에 퇴계나 율곡도 제사에 차를 올리던 풍속이 물을 올리는 것으로 대치됐다고 한 것이나 절에서도 청수를 썼다는 기록을 보면 조선중기에는 차를 마시는 습속이 거의 사라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차가 성행한 것은 신라 흥덕왕3년(828)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이후부터였다.

고려시대에는 귀족층을 중심으로 다도가 유행해 다모가 관리하는 다방이라는 하급 관청까지 있었다.

특히 절에서는 차를 마시는 습속이 성행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까지 외면당했던 차는 절에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세기에 들어와 다시 유행한다.

정약용 김정희 초의 같은 인물이 다도의 이론을 정립시켰다.

그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다도가 강요되다가 1960년대 이후 다시 관심이 일기 시작해 70년대 후반부터 한국차인연합회가 조직되는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어제는 차인들이 제정한 제20회 "차의 날"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쌍용그룹 창업주 고 김성곤씨의 부인으로 전통차보급에 앞장서 오다 81년 타계한 김미희씨에게 정부가 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또 전국적으로 갖가지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한량들의 식도락이 아니다.

소동파는 차가 번민과 마음의 때를 씻어준다고 했다.

임어당도 차를 마시는 것은 속세의 시끄러움을 잊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잔의 차를 마시더라도 여유롭게 마음을 적시며 잡념을 씻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전통 다도에서는 꼭 몸의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 정신 건강에 더 중점이 두어졌었다.

그런데서 다선일미라는 말도 생겼다.

다문화운동이 인간의 기계화와 이기주의 자아상실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병 치유에 일조가 된다면 그처럼 바람직한 일도 없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