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점차 더 중요한 요소가 돼가고 있는 세상이다.

당연히 과학기술을 말할 때도 돈벌이에 도움되는 과학기술이 우선적이다.

말하자면 "실용적" 과학기술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 물정을 모른채 과학 그 자체의 연구에 골몰하는 과학자 또는 아마추어 과학자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더구나 옛날 역사를 보면서 내게는 그런 생각이 더 절실하다.

지난 5월초 한국을 방문한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의 과학사 교수 프레데릭 처칠은 내게 이런 산뜻한 느낌을 전해주고 갔다.

19세기 생물학사를 전공하는 처칠 교수는 5월3일 서울에서 두 번 논문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꼭 1백년 전 독일에서 있었던 벌의 생태에 관한 아마추어 과학자와 전문 과학자의 공동연구 및 그에 따른 갈등 과정을 소개한 내용이다.

꿀벌이 세 가지로 구성돼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왕벌 수벌,그리고 일벌의 세종류가 그것이다.

사회성 곤충 중에서 가장 진화한 꿀벌은 한마리의 여왕벌과 계절에 따라 그 수가 변하는 수만마리의 일벌,그리고 번식기인 4~9월에 나타나는 2천~3천마리의 수벌로 한 무리를 구성한다.

여왕벌과 일벌은 모두 암컷으로 똑같은 수정란에서 태어난다.

여왕벌과 일벌이 나눠지는 것은 그들이 자라는 벌집의 종류 및 유충기에 주어지는 먹이의 양과 질에 따라 결정된다.

로열젤리를 많이 섭취한 놈이 여왕벌이 되고 여왕벌은 오로지 알만 낳는데,자성수정란과 웅성무정란을 나누어 낳는다.

일벌은 청소 육아 파수 등을 담당한 내근벌과 꽃을 찾아 꿀과 꽃가루를 수집해 오는 외근벌로 구별된다.

한창 바쁘게 일할 때의 수명은 30~40일,겨울에는 6개월 정도다.

침은 산란관이 변화한 것이고 사람과 가축을 쏘는 것은 일벌이다.

수벌은 체형이 작고 통통하며 종족유지에 필요한 여왕벌과의 교미가 유일한 역할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꿀벌에 대한 지식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 몇 가지만 소개하면 그렇다.

그런데 이런 지식이 밝혀지기까지에는 무수히 많은 과학자와 아마추어 연구자들의 노력이 있었던 것을 처칠 교수는 일깨워 주었다.

1백년전의 몇햇동안 몇가지 예만을 들어 그는 아주 재미있게 꿀벌 연구의 과정을 설명했다.

놀라운 사실은 유럽과 미국에는 19세기 동안 꿀벌의 생태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자도 많았지만 아마추어 연구자가 숱하게 많았고 그들이 모여 발표하는 학술 모임도 여럿이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내는 인쇄물만도 수백 가지를 넘었다는 것이다.

학문이란 이처럼 사치스런 것이 아닐까.

그까짓 꿀벌의 생태를 밝히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머리를 싸매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핏대를 높이기까지 했단 말인가.

그렇게 애써 밝힌 여왕벌와 일벌이 달라지는 이치가 우리 인간에게 이렇다할 이득을 준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하물며 1세기 전의 연구자들에게야 더구나 아무런 혜택이 있었을 까닭이 없다.

아무런 물질상의 이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를 쓰고 꿀벌을 연구했던 것이다.

요즘처럼 당장 돈되는 것만 연구하는 학문 풍토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연구하고 또 한국에 와서 발표한 이 미국의 대학 교수란 또 무엇인가.

처칠 교수는 1세기 전의 꿀벌 생태 연구과정을 밝혀서 지금 어디 쓰겠다는 말인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1세기 전의 유럽 꿀벌 연구 과정을 연구하겠다고 연구 계획을 내면 어느 연구 기관에서 연구비를 주려할까.

대답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우리 학문 수준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이렇게 쓸모 없어 보이는 연구가 많고 그런 연구자가 많아져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돈되는 실용적 연구만을 중시하고 그런 연구로 얻어내는 지식을 "신지식"으로 부르는 경향까지 있다.

그래서 기초과학은 멍들고 인문학은 망해가고 있다는 비명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학문이란 본질적으로 인간 누구나 갖고 있는 호기심에서 비롯하며 또 그래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문을 실용 중심으로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지 않아도 학문의 전통이 짧은 한국인들이 지금 지나친 실용주의에 빠진다면 이 땅에 깊이있는 학문적 전통을 만들기란 더욱 어려워질 따름이다.

옛날 노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무용지용이라 하여 "쓸모 없는 것의 쓸모"에 대해...

"돈벌이가 되는" "신지식"이 난무하는 가운데 "구지식"인 과학사를 공부한 제자들이 직장도 없어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1백년 전 유럽 사람들의 꿀벌 연구를 되새기게 된다.

parkstar@ 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