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개발과 인터넷뱅킹 등으로 대표되는 정보기술(IT) 분야에 은행들이 사활을 걸고 있다.

전자금융시대를 맞아 다른 은행에 뒤쳐진다면 고객에게 버림을 받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될 수 밖에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은행들이 한해 올리는 수익의 수배에 달하는 엄청난 비용을 IT 투자에 쏟아붓겠다는 계획도 이래서 나온다.

시중은행 중에서 하나은행은 롯데그룹 등 대기업과 합작해 인터넷결제전문은행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조흥은행도 내년까지 순수 인터넷은행을 자회사로 거느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주택은행도 인터넷은행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가동중이다.

한미은행 역시 최근 대주주의 하나인 뱅크아메리카(BOA)의 권고를 받아 인터넷뱅크 설립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뱅크를 포함한 IT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은행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수익성도 문제다.

신동혁 한미은행장은 "초기 투자비로 적어도 5백억원 가량이 소요된다"며 "투자한 만큼 수익성이 있을지가 문제"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실제로 한은에 따르면 미국에 설립된 순수 인터넷은행중 결산 결과가 나온 8개은행 가운데 2개 은행만이 지난해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인터넷은행의 수익성은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은행들의 IT 투자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굴러가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디지털뱅킹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잉투자나 수익성을 우려해 투자를 중단했다가 시스템에서 뒤쳐진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라며 "먼저 투자해 경쟁력을 높이는 쪽이 2차구조조정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인위적인 제동장치가 나오지 않는한 은행들의 과잉투자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금융계에서는 과잉투자 해소로 은행간 합병을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은의 내부보고서가 이와 같은 맥락이다.

김승유 하나은행장도 "투자비를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라도 합병이 필요하다"며 이같은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간 자발적 합병이 쉽지 않은 현 풍토에서는 이상적인 대안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아예 인터넷금융을 활성화 해 은행산업 개편을 촉진하자는 강수도 제안됐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금융감독위원회에 낸 보고서를 통해 "기존 우량은행이나 일정규모 이상의 외국금융기관에만 인터넷은행 설립을 허용하는 안"을 제시했다.

금융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인터넷은행 설립은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불투명하고 단기적으로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며 "현 조건에서 인터넷뱅킹을 추진할 수 있는 은행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은행 설립을 허용하되 엄격한 진입장벽을 설치해 과잉투자를 막자는 것이다.

이러면 전자금융부문에서 확실한 선도은행이 나올 수 있어 은행구조조정도 자연스럽게 앞당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연구원은 또 기존 은행이 순수한 인터넷은행으로 전환할 경우 이를 허용해 부실은행이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대형은행이 지방은행을 인수하고 인터넷은행들 통해 지역 영업망을 구축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kimjh@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