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진성호와 이현세,그리고 스티브 김 세 사람은 플라자호텔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마천루 사이의 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이현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투자설명회에서 내놓을 대해실업의 재무제표가 자신의 감독하에 작성되었으나 투자설명회에 내놓기에 아무래도 마음이 꺼림칙했기 때문이었다.

근본적으로 대해실업의 재무제표는 조작된 것이었다.

재고자산의 대부분은 팔리지 않은 구형 모델로 실제 가격은 재고가치에 훨씬 못 미치며 미수금 총액도 비슷한 경우였다.

지난해 억지로 흑자를 만들었으나 순수하게 회계원리대로 한다면 막대한 적자였다.

"미국 투자자들이 한국경제를 실제로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진성호가 스티브 김을 향해 묻는 소리에 이현세는 사념에서 깨어났다.

"무역적자가 쌓이고 외환보유액에 우려를 갖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좋게 봅니다.

여하튼 GNP 규모로 세계 11번째 국가이니까요.

그리고 한국민의 높은 교육수준과 근면성은 인정해주지요"

스티브 김이 말했다.

이현세가 대화에 끼여들었다.

"진정한 선진국가로 인정받으려면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 그 나라가 만든 자동차가 세계의 도로를 누벼야 하고,둘째 그 나라가 만든 영화가 세계 도시의 극장에서 상영되어야 하고,셋째 그 나라의 문학인이 창작한 소설이나 시가 세계의 지성인에게 읽혀져야 하지요"

"우리의 경우,자동차는 해결되었지만 영화나 문학 쪽은 아직 요원하지요"

진성호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자동차는 박정희가 온갖 희생을 감내하며 밀어붙인 경제발전 덕택인 듯합니다."

이현세가 말한 후 차창 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역시 뉴욕 맨해튼 거리는 자유경쟁이 존재하는 나라 특유의 활기에 찬 모습이었다.

진성호 일행이 탄 택시는 월 스트리트의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이름으로 보아 첫 설명회가 예정된 보험회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잠시 후 15층에 있는 회의실로 안내되었다.

우리나라 시중 은행의 중역실 반 정도 되는 넓이에 직사각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벽 한쪽에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으며,구석에는 탁자 위에 커피포트와 도넛 오렌지 주스통이 놓여 있었다.

"투자담당자들이 곧 올 겁니다.

커피 드시며 잠시 기다리시지요"

스티브 김이 말했다.

진성호와 이현세는 커피를 따라 커피잔을 들고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이현세는 브리프 케이스에서 요약한 설명자료를 진성호 앞에 정리해놓았다.

곧이어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세 명의 미국인이 회의장에 들어섰다.

스티브 김이 그들에게 자신을 소개한 후 진성호와 이현세를 소개해주었다.

서로 명함을 교환한 후 여행으로 피로하겠다는 투자담당자들의 말과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다는 진성호의 말 등 몇마디 형식적인 인사말을 나눈 뒤 곧바로 설명회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스티브 김은 자신은 회의장 밖에 있겠다며 필요하면 언제라도 부르라고 말한 후 회의장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