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그토록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던 국가채무 논쟁은 결국 아무런 대안도 없이 정치권의 한판 소모적 논쟁으로 끝나버린 형국이다.

국가채무의 쟁점화에 따른 정치권의 득실 여부를 떠나 과도한 국가채무는 경제의 효율적 운용에 심각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므로 64조원의 금융구조조정 재원마저 모두 고갈된 지금 다시 한번 차분히 최근의 국가채무 확대 현상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국가채무 논의의 핵심은 그것이 1백8조원이든 4백조원이든 현 채무규모 그 자체가 아니라 지난 3년간 두 배 이상 급증했고 올해에도 최소 20조원 이상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는 급격한 채무확대 추세에 있다.

국가채무 통계에 보증채무와 잠재적 채무를 명시적으로 포함시켜야 하는지를 논쟁하기보다는 잠재채무의 어느 정도가 얼마나 빨리 국가채무로 현실화할 것이며 이에 따른 대응책은 무엇인지가 논의돼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국가채무 급증 현상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채무확대 추세는 금융위기의 수습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단기적이며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지난 개발연대로부터 누적돼온 각종 비효율과 부실이 시장경제로의 전환과정에서 비로소 현실화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진정한 시장경제란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대한 보상과 책임이 개별 경제주체에게 명확히 귀속되는 체제이며 따라서 과거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유산이 말끔히 청산돼야만 우리 경제는 진정한 시장경제로 거듭날 수 있다.

최근의 투신권 문제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누적된 부실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책임 귀속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손실의 상당 부분이 국가채무로 귀착되고 있는 과정이 공적자금에 의한 금융 구조조정이다.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공무원연금 문제도 재정에서 충당해야 할 임금인상 부분을 과도하게 수혜적인 연금형태로 편법 보상해 옴으로써 누적된 부실이 연금재원의 고갈로 현실화된 것임에 다름 아니다.

누적된 잠재부실과 비효율이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잔존하는 한 이의 청산과정에서 국가채무 증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향후 민주주의의 발전은 그간 개발단계에서 억제돼 왔던 각종 사회복지 및 소득재분배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확대시킬 것이며 이 또한 재정적자의 확대를 통한 국가채무의 누증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가채무의 증대는 현 정부가 표방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구현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비용이며 따라서 최근의 채무확대와 관련해 여야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공론화하고 국민적 합의를 형성해 이를 토대로 보다 합리적인 향후 경제운용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이런 국가채무의 확대추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첫째 포괄적 국가채무 관리체제가 확립돼야 한다.

정부는 명시적인 국가채무의 관리는 물론 관리대상 채무범위를 보다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각종 보증채무,공공부문 채무,잠재적 사회보장채무 등의 직접채무화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장기 국가채무 상환능력을 관리해야 한다.

정부의 중기재정계획 또한 이런 포괄적 국가채무 수준을 바탕으로 수립 운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협의의 국가채무만을 기초로 제반 경제정책이 수립될 경우 자원배분의 동태적 비효율성이 증대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 시점에서 우리의 국가채무 감내력은 어느 정도며 이에 비추어 구조조정을 위한 추가 공적자금의 조성능력은 어느 정도인지가 투명하게 공론화돼야 구조조정 관련 당사자의 도덕적 해이가 최소화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책당국도 이해집단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국민부담 최소화의 원칙에 보다 충실한 방향으로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둘째 지방정부를 포함한 정부부문의 위험관리기능이 시급히 확충될 필요가 있다.

거시적 채무수준 관리와 더불어 유동성위험 금리위험 등 채무상환 부담이 재정에 미치는 다양한 위험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에 대응해 적정 채무구조를 유지 관리하는 미시적 위험관리 또한 국가채무관리의 주요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적인 위험관리시스템의 보유 및 관련 인력의 전문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최근 재경부에 설치된 국가채무관리전담반은 전문인력의 충원과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명실상부한 국가채무관리 전담조직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

국채시장의 발전,금융시장의 심화와 더불어 영국 호주 태국 등 많은 국가들이 최근 전문성을 갖춘 별도의 국가채무관리 전담기구를 설치한 바 있으며 IMF와 세계은행을 중심으로 국가채무관리를 위한 국제모범규준 또한 마련될 전망이다.

정부부문의 체계적인 국가채무관리 능력 보유 여부가 국가신인도의 주요 결정요인임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jhah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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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약력 =

<>서울대 인문대 졸업
<>미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박사
<>미 샌타바버라대 조교수
<>KDI 연구위원
<>세계은행 자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