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단오날이면 서울 태고종 봉원사에서는 영산재가 열린다.

무형문화재 50호로 지정돼 있는 이 영산재의 특징은 범패가 근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범패는 영산재 속에서 유일하게 맥을 이어 오고 있는 셈이다.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송가인 불교의식음악 범패는 신라말의 선승 진감국사(774~850)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온다.

하지만 "삼국유사"등 당시 기록을 종합해 보면 그 이전에도 범패승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진감은 당나라에서 범패를 배운뒤 귀국해 그것을 널리 보급한 최초의 인물로 보아야 할것 같다.

진감의 법명은 혜소이고 속성은 최씨로 전주 금마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하여 시장 한 모퉁이에서 장사를 하며 부모를 봉양하다가 뒤늦게 30살대 조공하러 가는 사신의 뱃사람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창주에서 신감대사의 제자가 됐다.

26년만에 귀국한 그는 경북 상주 쟁백사에 머물다 지리산 화계골짜기에 옥천사를 지은뒤 입적했다.

이절이 뒤에 쌍계사가 된다.

선가에서 중시하지 않는 범패승이었기 때문인지 원효 의상 자장은 알아도 요즘 진감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가 금옥처럼 고운 목소리를 부르는 범패를 배우기 위해 대중이 몰려들었고 의술도 뛰어나 병자들이 항상 뒤따랐다는 것을 보면 그는 평민적이고 소박한 백성들의 스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이 검은 탓으로 사람들이 "흑두타"라는 애칭으로 불렀다는 기록을 봐도 그렇다.

그가 심은 차나무가 지금 쌍계사 인근을 명다의 산지가 되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쌍계사에는 헌강왕이 세운 국보 47호 ''진감국사 대공영탑''이 남아있다.

5월은 ''진감국사의 달''이다.

국립극장에서는 그를 주인으로 한 음악극이 공연되고 있다.

그를 재조명하는 세미나도 열린다고 한다.

하지만 봉원사에서는 금년들어 범패의 마지막 기능보유자인 박송암스님과 장을벽스님이 연이어 입적해 ''영산재''의 맥이 끊길지경이라니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