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율 < 濠 국립그리피스대 한국학 석좌교수 >

지난 4월초 한국의 전 국무총리가 호주 그리피스 대학을 방문해 공개강연을 할 때 한국의 민주정치가 아직도 발전해야 될 여지가 많다고 했더니 청중중 한국인 한 사람이 한국의 민주정치는 최고로 발전돼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16대 국회의원선거를 보니 한국의 민주정치는 아직 더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 지난번 선거에서는 한국 정치의 특성이자 결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선거결과는 한마디로 영남과 호남간의 지역간 감정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영남과 호남에서 각각 압승했을 뿐 아니라 그 지역에서 당선자들이 얻어낸 지지율이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유권자들이 정책적인 이유가 아니라 완전히 지역이라는 공통점을 발휘해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 당에게 무조건 지지표를 던졌다는 것을 입증한다.

민주정치는 정당정치다.

정당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소망을 국가 정책에 전달하는 기구로서 정책적인 이념과 노선을 국민 앞에 제시하고, 국민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하면서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면서, 또 여.야당이 바뀌어 가면서 정책적인 문제를 조금씩 풀어가는 것이다.

민주정치의 기본적 정책 문제중의 하나는 경제적 문제이다.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효율과 평형, 즉 국민소득의 극대화와 소득의 균등분배인데 이 두 문제점은 이율배반적이라서 국민이 모두 만족하게 동시에 성립시킬 수 없다.

그래서 소득의 균등한 분배를 희생하면서 국민소득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당과 국민소득이 희생되더라도 균등한 소득분배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당이 궁극적으로 형성되게 마련이다.

영국의 보수당, 미국의 공화당, 호주의 자유당은 국민소득의 극대화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당이며 영국의 사회당, 미국의 민주당, 호주의 노동당은 균형적인 소득분배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서 국민들의 정치적인 이념은 이 두 이념을 중심으로 발전돼간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이번 선거결과로 나타난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성숙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다.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 또는 정치인의 능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지역감정에 호소해 당락이 결정됐다.

왜 이렇게 됐으며 그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과연 한국은 이 정치적 지역주의를 탈피할 수 있을까.

첫째 정당들이 본연의 구실을 못한다.

헌정 이후 2백여개나 난립했다가 없어지곤 하면서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방향을 유권자들이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정치적 소망을 국가정책에 전달하는 정당으로서 소기의 역할을 못하고 당수나 당 지도자를 보조하는 기구로 변질해 버렸다.

입후보자를 당수가 정하는 것과 같은 정당의 운영이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이 비민주적이고 투명성이 없어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며, 또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당수를 가부장처럼 보조하지 않을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정당정치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증거다.

둘째 우리의 문화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인 것 같다.

한국사람들은 정서적이고 감동적이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윤리적 기준에 준해서 투표를 하는 성향이 크다.

그러니 정당의 정책방향보다 입후보자의 인간성이 더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한다.

이번 선거가 입후보자들간 비방이 극도에 달해 입후보자들의 인간성을 훼손시키는 선거였으니 정치가들에 대한 불신이 더욱 고조됐고 투표율이 최대로 낮을 수밖에 없었으며 선거가 그 기본 목적인 정책이념이나 노선의 선정과는 아무 관계가 없게 됐다.

셋째 한국사회는 가족 학교동창 지역을 중심으로 한 단체주의 사회이다.

그래서 "우리"라는 것과 "우리가 아닌 것"을 분명히 분리해 차별한다.

정당의 정책노선을 모르고 있는 유권자들이니 선거의 기준이 자연 "우리 지역당"이 되고 여기에 표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이용해서 정객들은 국민들의 지역감정을 부추기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정치가 계속돼 가는 한 한국의 민주정치는 발전을 못하며 정치적인 마찰과 지역적인 불신은 더 심해지고 경제나 다른 중요한 정책문제들이 희생을 당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그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라는 둘레를 키워야 한다.

지금 우리의 주변에는 세계화의 조류에 휩쓸려 국가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유럽은 각 나라의 주권마저 상당히 희생해 가면서 공동체화돼 가는 이 시점에 호남이다 영남이다 하면서 마찰과 불신을 조성하며 국가의 보다 중요한 문제를 희생할 때가 아니다.

이런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초.중.고등학교에서 제공하는 윤리교육을 쇄신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정당정치가 가부장적 제도에서 탈피해야 한다.

각 정당의 정책방향이 서민이 이해하고 분별할 수 있게 제시돼야 하고 당수의 후보자 임명이라는 비민주적 정치관행이 없어져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현재 당수들의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희생적인 결단이 요망된다.

Y.Kwon@mailbox.gu.edu.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