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은 입만 열면 "시중은행들의 자발적인 경영혁신"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시중은행들이 자율경영을 할 여건이 됐는지는 의문이다.

막상 시중은행들이 경영혁신을 하려고 해도 은행경영의 핵심요소인 인사 금리 자금 등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니 딱한 일이다.

시중은행들이 지난 98년초 종합금융회사 정리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에 빌려준 4조4천억원의 대출금을 콜금리에 1.5%포인트 가산금리를 받는 조건으로 만기연장 해주기로 한 사실도 이같은 점에서 생각해볼 점이 많은 대목이다.

공적자금을 몽땅 부실은행에 털어 넣고 새로 돈을 마련할 길도 없는 예보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같은 대출때문에 2천억원에 달하는 역마진이 발생해 그것이 바로 은행부실로 연결되고 동시에 금융자율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은행장 선임을 둘러싼 잡음도 마찬가지다.

원래 금융업은 경영진의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고객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외환위기로 신인도가 크게 떨어진 국내은행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국내은행중 비교적 경영상태가 좋고 정부지분도 적은 국민은행의 은행장후보로 금융감독원 출신 인사를 밀어 "관치금융에 의한 낙하산 인사가 부활한 것 아니냐"는 인상을 준 것은 사실여부와는 관계없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노조와 외국인 대주주가 반발하는 등 후유증이 커질 태세여서 걱정이다.

"예금금리를 올려 수신고를 높이고 생존하려는 은행경영진이 있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경고한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의 발언도 문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 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에 대한 추가적인 감자는 없다"는 말은 정부가 대주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예금금리에 대해서는 무슨 자격으로 시비를 거는지 알 수 없다.

금리안정이 급하다면 한국은행이 돈을 풀거나 재할인율을 낮출 일이지 정부당국자가 은행경영진에게 잘못 운운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또한가지 걱정되는 일은 정부가 함부로 하기 어려운 외국은행은 제쳐 놓고 만만한 국내은행들에만 모든 부담을 지우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예보가 만기인 오늘까지 갚지 않으면 연체금리를 물리거나 소송을 걸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시중은행들이 한발 물러선데 비해 외국은행이 된 제일은행은 대출자금을 돌려받은 것이 좋은 예다.

무디스사가 몇몇 국내 우량은행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면서 그 이유로 정부지분이 적어 독립경영이 가능하다는 점을 꼽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