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부에서 최장수 장관인 김성훈 농림부 장관이 지난주 취임 2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보화를 통한 지식영농을 한국 농업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한국의 장관들이 얼마나 단명하면 취임 2주년이 화제가 되는 것인지 희화적
이다.

하지만 지식영농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는 점에서
지난주 김 장관의 기자회견에는 희화성과 진지함이 교차됐다.

전세계적으로 농업 생산성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이다.

전체 인구의 2%도 안 되는 농민들이 미국 전체 식량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고
남을 만큼 생산하고도 수출시장을 찾지 못해 1980년대 중반 이후 농가들이
줄줄이 퇴출되고 있는 판이다.

그리고 이같이 높은 미국 농업계의 생산성에는 세계 최대 농기계 메이커
디어 앤 컴퍼니(Deere & Company)가 크게 기여했다.

디어는 미국 동북부 버몬트주에서 1804년 태어난 대장장이, 존 디어(John
Deere)가 서부개척시대, 당시로서는 최전방 서부지역이었던 일리노이주로
이주해 1837년 쟁기 만드는 회사를 설립하며 시작됐다.

1백6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디어는 1980년대 중반 미국 전체 농가중 10%가
도산하는 농업위기 당시 약간 고전한 것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농기계 생산에
전념하며 흔들림 없이 성장했다.

1998년 3만8천여명의 직원으로 16조6천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이는 한국 전체 농기계업계 매출액의 17배가 넘고, 현대중공업 매출액의
2.4배에 달하는 액수다.

당기순이익은 1조2천억원으로서 현대중공업의 11배에 달했다.

포천 1백19대 기업으로서 주가로 따진 기업가치는 현재 10조원을 넘는다.

사슴을 회사 로고로 쓰고 있는 이 회사가 정말이지 얼마나 사슴처럼
불로장생의 생명력을 가진 탄탄한 회사인지는 현재의 최고경영자가 창업주
이래 7번째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창업주에 이어 그 아들이 2대 사장을 지내고, 창업주의 증손자가 4대 회장을
지내기까지 사실상 1백11년간 가족 경영이 이어졌다.

1955년에 와서야 전문경영인 시대가 열렸지만 5대 최고경영자도 27년간이나
디어를 통치했다.

현재 회장도 디어에서 착실히 승진해 그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 10년 넘게
사령탑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지루할 정도로 별 변화없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10년간
연평균 이익증가율이 11%, 주식가치 상승률 역시 11%를 기록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탄탄한 회사도 지난해엔 매출이 18% 가까이 하락하며 일대
위기를 맞았다.

1990년대 초부터 불기 시작한 지식영농 또는 정밀농업이 가장 큰 원인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 속에서 미국의 농가들은 더 이상 자본재의 투입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보고, 농지 각 부분 부분의 특성을 글로벌위치확인
시스템을 동원해 손바닥 보듯 정밀히 파악해 농약이며 비료 수분공급은 물론
특정 지역 토양에 어떤 작물을 심어야 가장 좋은지를 가려 농사를 짓고 있다.

이제는 좋은 기계 싸움이 아니라 명석한 두뇌 싸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농토를 비집고 다니는 사람은 더 이상 디어의 영업사원이 아니라 이름없는
소규모 농업컨설팅 회사의 프로그래머들이다.

1996년 통과된 "농장에 대한 자유(Freedom to Farm)법"도 디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로써 1960년대 이래 지속돼 왔던 농민들에 대한 각종 소득보전 조치들이
대부분 폐지됨에 따라 미국 농업계는 그야말로 완전 경쟁에 들어섰고 그래서
많은 농부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 농업계는 작년부터 줄기차게 미국 정부와 의회에 대해
외국 농산물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뭐하냐고 닦달하고 있다.

김 장관 말처럼 우리도 지식영농이 아니라면 미래가 없는 셈이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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