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 중앙대 교수 / 경제학 >

은행광고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친근한 이웃 같은 이미지 전달이 거의 전부였다.

그러나 IMF환란 직후에는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는 광고가 많았다.

최근엔 안전성을 강조하는 광고가 늘었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금보호한도 축소때문이다.

내년부터는 금융기관별로 1인당 예금보호액이 2천만원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은행예금을 들때도 이자율뿐만 아니라 안전성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예금보호한도를 축소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예금자들의 신중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즉 예금자들이 안전성은 무시하고 고수익만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되면 예금유치를 위해 무조건 높은 이자율을 제시하는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도 줄일 수 있다.

금융기관들은 과거와 같은 무모한 투자를 삼가게 돼 금융시스템의 안정이
촉진된다.

이미 이와같은 현상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우량은행은 예금이자율을 인하하고 있다.

이자율이 낮더라도 예금자들이 안전한 금융기관을 선호할 것이라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상호신용금고와 종합금융회사등 중소금융기관들은 비상이
걸렸다.

작년 한햇동안만 해도 금고는 전체 수신고의 16%인 4조9백11억원이
빠져나갔다.

올해는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되리란 예상이다.

이에따라 금고업계에서는 예금자보호법 시행을 2002년까지 2년 연장해주고
보호금액도 4천만원으로 확대해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경제부나 금융감독위원회의 입장은 단호하다.

더 이상 부실 금융기관이 양산되고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악순환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이나 전문가들도 이런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금융기관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많은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그러나 아직도 재무건전성이 취약한 금융기관이 많다.

정부는 예금자보호법이 시행되면 취약한 금융기관들은 생존을 위해 흡수.
합병 등 자구책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 주도로 달성된 1차 금융구조조정과는 달리 2차 금융구조조정은 시장의
힘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취약한 금융기관들끼리 합쳐보아야 더 큰 취약한 금융기관만 생긴다.

금융기관의 건전성 판단기준이 미래상환능력을 감안한 새로운 건전성기준
(FLC)으로 바뀌었다.

일부 보고서에 의하면 이 기준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BIS 자기자본비율
8%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은행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므로 일부 대형은행들이 상호신용금고보다 안전성이 높다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금자들은 대형은행, 특히 정부가 대주주인 은행을 더
신뢰한다.

최악의 경우 우선적으로 대주주가 예금에 대해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금융구조조정은 정부에서 의도한 바와는 반대로 갈 수 있다.

즉 건전한 신용금고는 도태되고 부실한 대형은행은 살아 남게 되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예금자보호법의 시행이 대마불사의 논리로
인해 또 다른 도덕적 해이를 낳는 셈이 된다.

전액 예금보호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최근에 금융위기를 겪은 태국
인도네시아 멕시코 및 금융시스템이 불안한 일본 등 10개국에 불과하다.

일본은 내년부터 예금전액보장제도를 폐지할 예정이었으나 금융혼란방지를
이유로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조치에 관해 일본 내에서는 개혁의 후퇴라며 반발 역시 만만치
않다.

우리도 일본과 같이 부분보장제도 시행을 연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편 예금보험기구를 운용하고 있는 나라들의 평균 예금보호한도는 1인당
GDP의 약 3배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10만달러, 프랑스가 6만5천달러 수준이다.

2천만원은 우리 국민소득의 2%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평균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더구나 우리 금융시장은 이들 국가보다 훨씬 불안정한 상태이다.

따라서 금융시스템이 안정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예금 보호금액을 3천만원
이상으로 상당 폭 인상하는 것을 고려해볼 만하다.

따라서 금융시스템이 안정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예금보호금액을 상당폭
인상하는 것은 고려해볼 만하다.

이로 인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예금기관별 예금보험료의 차등
적용방침은 내년부터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

금융권의 잔액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2천만원 이상의 예금계좌 수는 적지만
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7%에 이른다고 한다.

예금보호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고액예금은 2천만원 단위로 쪼개 여러
금융기관에 분산예치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따른 거래비용도 상당히 크다.

금융시스템의 경쟁력 강화에 저해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거래비용 감소라는 측면에서도 예금보호금액의 인상은 바람직하다.

< hongecon@hotmai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