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늙었어요!" 마텔 ]

세계 완구업계 최대 연례행사로 9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국제 완구
박람회가 지난달 10~17일 뉴욕에서 열렸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10여년간 고작 1.5% 안팎의 저조한 성장세에
만족해야 했던 완구업계가 지난해엔 8.8% 높은 매출신장률을 기록해 박람회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다 좋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97~98년 아시아 경제위기 때 위축됐던 것의 반등일뿐 세계
완구업계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완구업 세계 1위 기업은 미국의 마텔(Mattel,Inc.)이다.

작년 2만9천여명의 직원으로 매출액 6조3천억여원을 올려 세계시장의 10%,
북미시장의 25%를 석권했다.

한국의 28배다.

이 회사는 특히 세계 완구시장의 전반적인 정체속에서도 최근 10여년간
연평균 18%대의 주당순이익률과 연평균 25.5%의 주식투자수익률을 기록해
발군의 성과를 냈다.

마텔은 해럴드 맷슨(Harold Matson)과 엘리엇 핸들러(Elliot Handler)가
1945년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사진 액자를 만들며
시작됐다.

회사 이름도 이 두 사람 이름을 합성해 만들었다.

하지만 동업은 곧 깨져 맷슨이 빠지고 핸들러의 부인 루스 핸들러가 참여
하며 완구 제조로 방향을 잡았다.

마침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기 출산 붐이 이어지며 완구시장은 전에
없는 호황을 누리던 참이었다.

50년대 뮤직박스로 성공기반을 다진 마텔은 1959년 핸들러 부부의 딸 애칭
을 딴 바비(Barbie) 인형을 내놓으며 폭발적 성장세를 시작했다.

마침 베이비 붐이 최고조를 이루던 때였다.

이듬해 뉴욕증시에 상장하고 65년에 포천 5백대 기업에 들었다.

지난 40년 동안 10억개 이상 팔린 바비는 지금도 매년 한국 전체 완구매출액
의 8배가 넘는 2조원어치씩 팔리고 있다.

68년에는 모형 자동차 핫 휠즈를 내놓아 또 한번 히트를 쳤다.

지금껏 20억개를 팔았다.

70년대 중반 핸들러 부부가 회사를 떠난 후 마텔은 전문경영시대에 접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창업주의 초심이 사라진 데다 베이비붐도 수그러들자 마텔 경영진은
테마파크며 서커스단 애완동물용품회사 출판사 영화사 등을 인수하며
문어발 경영에 탐닉했다.

80년대 초 위기를 맞고서야 80년대 중반부터 다시 완구에 전념했다.

그러나 이후 마텔은 완구회사가 아닌 마케팅회사가 됐다.

자신의 창의적 제품은 하나도 없이 바비인형과 핫 휠즈에서 줄줄이 가지
치기, 다른 기업 인수하기, 유명 영화 캐릭터 라이선스 하기 등으로 몸집
불리기에 급급했다.

결국 과도한 인수비용과 라이선스비 지출로 지난해 1천억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이에 주가는 작년 3월 46달러에서 현재 10달러대로 폭락했다.

한데 마텔만 이런 것이 아니다.

세계 2위 업체 해스브로(Hasbro) 주가도 최근 1년새 반토막났고 완구 전문
소매체인점 토이즈 알 어스 주가도 3분의 1로 폭락했으며 인터넷 완구 소매점
e토이즈의 주가도 4분의 1로 폭락했다.

완구업 전체가 몰락하는 양상이다.

여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두가지가 가장 중대하다.

하나는 요즘 아이들의 취향이 전통적 완구보다 비디오게임으로 편향되고
있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갈수록 조숙해지고 있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처럼 미국에서도 아이들이 7세만 되면 각종 운동학원 음악학원
공부학원에 다니느라 놀틈이 없다.

저녁엔 숙제와 TV 시청으로 바쁘다.

높은 이혼율 그리고 어린이시장 공략에 눈 먼 각 산업계의 집요한 광고공세
도 아이들의 조숙을 강요하고 있다.

"여보, 아이들이 폭삭 늙어버렸어요!"라는 영화가 나올 판이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