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성바둑계의 대모로 통하는 한일랑(52) 한국여성바둑연맹회장은
요즘 신바람이 난다.

중국출신의 여성기사 루이 나이웨이 9단이 조훈현9단을 꺽고 국수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남자기사들이 독식해온 바둑판에 여성이 유명기전을 "탈취"한 것은 세계
바둑사에 기리 남을 하나의 대사건임에 틀림없다.

루이가 이뤄낸 "성의 혁명"은 한개인의 영광을 넘어 여성바둑인 전체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쾌거다.

꿈나무 육성과 여자바둑인 저변확대에 앞장서온 한회장은 이번 "사건"을
여성바둑발전을 위한 제2의 도약기회로 삼고있다.

시아주버니인 신격호 롯데회장 부부가 마주앉아 사이좋게 수담을 나누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바둑을 배우게됐다는 한회장.

이제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7급)으로 아마6단실력의 남편(신준호 롯데햄
우유 부회장)과 반상의 정을 나누며 부부애를 과시하고 있다.

한회장을 만나 여성바둑발전방안등에 대해 들어봤다.


-여성 바둑계에선 루이9단이 사상 처음으로 국수위를 차지한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그동안 국내 여류기사들의 기력은 남성에 비해 크게 못미친게 사실이었
습니다.

여자이기때문에 그렇다는 식으로 폄하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루이9단의 쾌거는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뒤떨어져야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증명한 셈입니다.

현재 조혜연 박지은등 10대 기사들의 기량은 날로 향상돼 조만간 남성기사
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걸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회전반적으로 페미니즘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등 예술분야에서는 상당히 거센 편입니다.

바둑계에도 페미니즘시대가 열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동감입니다.

외국에선 여성대통령이 탄생할 정도로 여성들의 활약이 다방면에서 활발해
지고 있습니다.

21세기에는 바둑계에도 남녀공존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봐야죠.

여성이 남성보다 수리력이나 숫자감각에서 떨어진다는 통설이 잘못됐다는게
이번에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여성들도 노력하면 반상을 평정할수 있다고 봅니다"


-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바둑 역시 상대의 허점을 이용한 승부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때 정서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물론 단점도 있겠지만 장점이 더 많은 두뇌스포츠라고 생각해요.

바둑은 정신을 가다듬고 인격을 수양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사교수단으로도 안성맞춤이고요.

그러나 무엇보다 거의 돈을 드리지 않고 여가를 즐길수 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가족들이 모두 바둑을 둘 경우 가족간 유대감도 더욱 강해지겠지요"


-바둑을 둘때 마음을 비우면 수가 잘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옛부터 바둑은 도인들이 즐기는 오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2년전부터 참선을 하는데 마음가짐으로 볼때 바둑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평상심을 가져야 번뇌가 생기지 않듯이 바둑을 둘때도 욕심을 안낼때 수가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됩니다"


-여성바둑계가 한단계 도약하려면 무엇보다 바둑인구가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여성바둑발전을 위한 방안이 있다면.

"상금이 걸린 기전을 늘리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기사들의 관심을 모으고 분발을 촉구할수 있습니다.

이런점에서 그동안 아마여류국수전 여류국수전 흥창배세계여자바둑선수권
등을 주최해온 한국경제신문사는 우리나라 여성바둑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온 일등공신이라고 할수 있지요.

한국여성바둑연맹도 아마추어들을 대상으로 어린이바둑대회와 회장배바둑
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만 이정도로는 부족합니다.

기업들이 후원하거나 언론계가 주최하는 기전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저도 이를 위해 열심히 뛸 생각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운영중인 바둑반 지원도 한방법일수 있을텐데요.

"그래서 저희 연맹에서는 원하는 학교에 수준급 강사들을 파견해 지도하고
있습니다.

강사진을 모두 30여명으로 짜여져 있는데 상당히 부족한 상태지요.

바둑인구 확대를 위해선 앞으로 강사진을 늘리는 문제도 숙제입니다"


-한회장께서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연맹을 이끌어 오고 계신데
그동안 여성바둑계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1989년 당시에는 부산, 대전등 2개의 지부만 있었는데 지금은 18개지부로
늘었습니다.

회원수도 당시 40~50명에서 1만여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현재 여성바둑바람이 불고 있으니까 새로 연맹 문을 두드리는 회원들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둑은 언제 배웠나요.

"시아주버님인 신격호 롯데회장 내외가 바둑을 두는게 그렇게 보기
좋더라고요.

그때 부부가 연로해도 함께 할수 있는게 바로 바둑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제 삶의 한부분이 되어버린 바둑과 연을 맺게 됐습니다.

요즘은 고형욱 아마6단과 권갑룡 프로6단에게 1주일에 한번씩 2시간정도
개인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현재 7급정도의 기력을 조금이라도 더 키우기위해서지요.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바둑기사를 개인적으로 키울 계획으로 있다고 들었습니다.

"문화교류 차원에서 외국기사들을 데려다 키워볼까 생각중입니다.

가령 몽골 같은 후진국에서 유망주를 들여와 일류기사로 키우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바둑불모지대인 몽골에도 바둑을 이식하게 되고 두나라간
문화교류도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셈이지요"


"바둑판 앞에만 서면 마음이 안정된다"는 한회장은 늙을때까지 계속 바둑을
둘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매주 1~2차례 필드에 나가 골프(핸디캡 90)
를 즐긴다.

또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자문위원을 맡아 노숙자 무료급식등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 윤기설 기자 upyk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