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논설위원 >

17일 서울 여의도에서는 전국의 의사들이 모여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잘못된 의약분업 바로잡기 전국의사대회"라는 집회명칭에서 알수 있듯이
오는 7월1일부터 시행될 의약분업에 대한 의료계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모임이었다.

여기서 제기된 문제는 진료수가 인상을 비롯 의약품분류 재조정, 약사의
대체조제 금지등 여러가지다.

지난해 11월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실시이후 병원경영이 어려워지고
특히 문닫는 동네의원이 늘어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의료계의 요구를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외면할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수입의 상당부분을 약제부문에서 충당해온 병원으로서는 의약분업이
이뤄지면 큰 타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그밖의 여러가지 주장들도 제도보완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과제들이다.

그러나 의사들이 그같은 현안해결을 위해 진료를 외면하면서까지 대규모
집회를 열어야만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료소비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의약분업이 선진화된 의료보건 체계이고, 또 국민적 합의로 시행이 이미
확정된 사항이라고 한다면 정부는 물론이고 이해당사자들도 자기몫 확대에
앞서 성공적인 시행을 위한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고 골몰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순서다.

사실 의약분업으로 가장 불편을 겪는 대상은 의료소비자들이다.

몸이 아프면 지금과는 달리 약도 마음대로 사먹을수 없게 된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의사처방을 받아 약은 약국에서 사먹어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주사를 맞으려면 의사처방에 따라 약국에서 주사제를 구입한후 다시 병원에
가지고 가서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생각만해도 짜증나는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염려도 있다.

의사 진료수가는 큰폭으로 오를수밖에 없고, 약값은 약값대로 올라가는게
아니냐는 걱정이다.

물론 종래 병원에 지불하던 약값을 약국에 지불하는 것에 불과하다는게
정책당국의 설명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의약분업에 동의한 것은 장기적으로 약의 오.남용을
막고, 적정한 처방과 조제를 통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다만 이같은 혜택이 시행과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서서히 나타난다는데 문제가 있다.

자칫 시행초기에 불편은 큰 대신 긍정효과는 나타나지않아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따라서 제도의 조기정착을 위해서는 의약분업에 관계되는 모든 이해당사자
들이 자신들의 이익확보에 급급할게 아니라 국민적 불편을 최소화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가장 선봉에 서야 할 주체는 정부다.

이해당사자들의 득실을 조화시키고 국민불편을 최소화시킬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사 약사, 그리고 관련업계등 이해관계자들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만에 하나 의약분업 제도가 시행초기부터 국민불신을 초래해 혼란에
휩싸인다면 의사나 약사,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다.

또 의약분업은 소비자와 의사 약사들에게만 파장이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의료및 제약등 관련산업에 엄청난 변화를 강요할게 뻔하다.

예컨대 제약업체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병원이나 약국의 경영
형태도 달라질 여지가 크다.

자칫 잘못되면 중소업체들의 무더기 도산과 경쟁력 높은 외국산 의약품의
국내시장 석권도 예상해 볼수 있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당장 해결하지않으면 안될 난제들이 산적해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어제 열린 대규모 의사집회는 의료계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결코 올바른 처사는 아니었다.

이해집단간 갈등이 심화될 경우 그 피해는 상대방에게 돌아가는게 아니라
애꿋은 소비자들만 골탕 먹는 결과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

또 그로 인해 상호 불신이 쌓이게 되면 우리의 보건의료 체계는 엉망이
되고, 국민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불행한 사태를 상정해볼수 있다.

의료보건체계의 대변혁이라 할수 있는 의약분업의 성공적인 정착은 준비
단계에서는 물론이고, 시행이후에도 이해당사자들간의 협조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의료계 내에서도 병원과 의원에 따라 이해가 엇갈리고, 병원이나 약국도
그 규모에 따라 득과 실이 다르다.

너 나 할 것없이 내몫만을 고집한다면 해결할 길이 막막하다.

특히 시행직후 국민들이 불편을 체감하게 되면 어떤 사태로 발전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내몫확보를 위한 투쟁보다 의사와 약사, 그리고 정부까지 힘을 합쳐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더 급한 일이 아닌가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