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 서울대 교수 / 전기공학부 >

과학기술부의 지식사회 예측 프로젝트에 참가한 적이 있다.

쏜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정보통신 발전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재 진행중인 변화의 흐름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지난 세기를 되돌아 보자.

1970년대는 IBM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시스템의 시대였다.

그리고 80~90년대까지는 MS나 인텔 등이 주도한 PC의 시대였다.

그렇다면 포스트PC 시대의 주인은 누구일까.

바로 시스코 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네트워크다.

그 후로는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의 시대가 아닐까 예상된다.

PC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기존의 PC장치들이 네트워크와 융합되고 있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포스트 PC시대의 가장 큰 시장은 가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거대한 가정 네트워크 시장은 엄청난 크기로 떠오를 것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가전회사들이 네트워크 융합 기술에 눈을 뜨고 있다.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정보가전기기 (Information Appliance) "의
대표적인 본보기가 디지털TV다.

이 TV는 "양방향성"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지금까지 시청자들은 일방적으로 TV를 보기만 했다.

하지만 디지털TV 시대엔 사정이 다르다.

한때 탤런트 김희선이 드라마에서 갖고 놀던 장난감 "요요"가 큰 인기를
끌며 수십만개가 팔린 적이 있다.

이 장난감을 디지털TV에서는 드라마를 보며 곧바로 주문해 살수 있다.

TV를 보다 화면에 나오는 장난감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가격은 얼마고
사양은 어떤데 사겠느냐"는 화면이 뜨는 식이다.

시청자가 일방적으로 드라마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TV와 서로 상호작용의
교류를 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TV는 기존 PC에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강화된 총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사무적 용도로만 쓰이던 이전 PC와는 완전 차별화된다.

한국도 첨단 네트워크 기술전쟁에서 낙오될수 없다.

승자가 돼야 한다.

그런데 이 전쟁에 나서면서 결코 놓쳐서는 안될 점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국내 디지털TV 산업의 수준을 알아 보자.

이미 시제품을 생산해낼 수준에 이르렀다.

겉모습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디지털TV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외국산이다.

이 TV를 1백달러에 판다면 40달러는 미국산 소프트웨어값으로, 20달러는
대만산 보드값으로 거의 다 뜯기게 된다.

실제 한국 업체가 받는 돈은 몇푼 안되는 껍데기값뿐이다.

게임기의 경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소니의 하드웨어 제품은 매우 우수하다.

한국은 같은 가격대의 경쟁 제품을 만들기 힘들 정도다.

일본은 구석구석의 모든 부품 기술을 발전시켜 효율을 극대화시켰다.

결국 단 10센트의 가격 싸움에서도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이런 현실은 우리에게 경고하는 바가 있다.

바로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기술발전의 흐름에서 꼭 첨단만을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지 못한 기본적인 기술부터 갖춰야 한다.

물론 이견도 있을 수 있다.

포스트 PC시대의 승자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또 부가가치 측면에서 봐도 네트워크나 콘텐츠는 월등하다.

즉 한정된 자원을 갖고 부가가치를 극대화시키는 곳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먼저 기본적인 바탕 기술과 인프라가 절실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부가가치가 작다 해도 바탕 기술을 확보하는 데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은 기술이라도 없으면 제품을 수입하고 기술지원을 받아야 한다.

기술지원을 받으려면 속을 그대로 다 드러내야 한다.

모든 전략과 노하우가 그대로 경쟁 상대에 노출된다.

이는 곧 또다시 산업 전체가 종속을 탈피할 수 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필자도 "리얼타임 운영체제(OS)"를 개발하고 있다.

리얼타임 운영체제는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데이터를 전달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영화나 음악이 끊기는 것을 막아준다.

이 운영체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업체에서는 개발을 외면했다.

대부분 외국 것을 갖다 쓰고 있다.

이대로 방치해 둔다면 기술과 제품을 공급하는 외국업체의 횡포에 계속
당해야만 한다.

이제부터라도 튼튼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술은 다양하게 발전해야 한다.

특히 기본 바탕기술이 부족하다면 거기에 먼저 힘을 쏟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 sshong@redwood.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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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컴퓨터공학 학.석사
<>미국 메릴랜드대 공학박사
<>미국 실리콘그래픽스 근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연구원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