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학생과 같은 전철을 타게 되었다.

등에 진 배낭에서 덜그럭대는 소리가 났다.

책이 들었다면 그런 소리가 나지는 않았을 거였다.

대체 배낭 속에 어떤 물건이 들어 있을까 궁금했다.

그 학생은 확실히 눈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머리를 붉게 염색하고 바닥에 질질 끌리는 바지를 입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차림의 젊은이들은 어디서나 쉽게 마주치고는 하니까 말이다.

학생은 전철을 탄 후에도 계속 귀에 이어폰을 낀 채 눈에 띄지 않게 발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 시간 그 또래들은 학교에 가 있을 거였다.

당연히 그도 학교에 있어야 했다.

어쩌면 그 시간 그의 부모님은 그의 진로 때문에 한숨을 쉬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가 배낭을 열었을 때 그 속에는 CD와 테이프들이 꽉차 있었다.

덜그럭대는 소리는 그것들이 부딪치면서 낸 소리였다.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유일한 책 한권도 음악과 관련된 것이었다.

내릴 정류장도 알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허둥댔다.

덜그럭대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그가 앉았던 빈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그의 미래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세월이 흐른 뒤 그가 만든 아름다운 노래를 길거리에서 들을지 모르겠다.

얼마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발표회가 있었다.

아이들 가운데 선발된 세명이 앞으로 나와 큰북과 작은북, 심벌즈를 쳤다.

그곳에 모인 학부모들은 손뼉을 치면서도 내심 자신의 아이가 세명에
끼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세명에 끼이지 못한 다른 아이들은 그런 것은 개의치 않는
것같았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캐스터네츠를 치고 탬버린을 흔드느라 양볼이
달아올라 있었다.

사람에게는 다 각자의 몫이 있다.

큰북을 치든, 뒤에 선 채 캐스터네츠를 치든 모든 아이들이 음악회에 꼭
필요한 아이들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발표회가 끝나고 아이들이 인사를 했을 때 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냈다.

캐스터네츠를 열심히 친 우리 아이에게 보내는 박수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