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규모는 2.69%(1997년)로 스웨덴
일본 미국에 이어 세계 4위. 기업의 총 R&D 지출액(세계 6위)과 총 R&D
인력수(세계 10위)도 수준급. 하지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평가한
과학기술 경쟁력은 세계 28위"

언뜻 보아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들 지표상의 "불일치"가 바로 한국의
R&D 투자에 존재하는 거품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일단 양적인 투자규모 면에선 한국의 R&D 투자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R&D 투자액은 지난 1966년 32억원에서 1997년 12조1천8백58억원으로
3천8백배, 기업부설연구소 수는 1981년 45개에서 지난해말 4천8백10개로
1백7배가 늘었다.

그러나 이같은 투자의 "결과"를 놓고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IMD가 평가한 과학기술 경쟁력이 최근 몇년간 20위권에 머물러 있기 때문
이다.

투입과 산출의 이런 불일치는 어디서 오는 걸까.

우선 투입량의 계산이 잘못돼 R&D 투자에 거품이 많다는 것이다.

민간 연구소들이 R&D 투자규모를 발표하면서 순수 R&D 비용 외에 땅구입비,
연구소 신축비용, 기술도입료 등 직접적인 R&D와는 무관한 비용까지 함께
집어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R&D 투자규모가 연간 수천억원입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빼고 나면 순수한
R&D 비용은 10분의 1도 안됩니다. 연구소 부지매입과 건물 공사 등에 쓰는
돈까지 R&D 투자에 포함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A대기업 연구소장)

물론 R&D을 위한 초기 투자비용이나 인프라 구축비용을 R&D와 아주 무관
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잘못된 "계산법"은 세제혜택의 형평성 문제를 제쳐
두고라도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은 R&D 투자를 비교적 많이(?) 하고 있다"는 인식의 확산이 바로 그것.

그리고 이런 인식은 "투입된 자원의 비효율적인 활용"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R&D 투자의 거품을 지속시키고 과학기술 경쟁력을 낮추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R&D 투자 계산, 제대로 하자 =R&D 투자의 거품을 빼고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선 국가차원의 연구개발비 산출방식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연구소 예산에 시설투자나 제품개발과 관련된 비용까지 포함시켜 거품을
만드는 일을 막고 순수 R&D에만 투자되는 정확한 액수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종합기술원 길영준 실장은 "세금감면을 위해 많은 기업들이 연구개발비
를 부풀려서 알리고 있다"며 "연구개발비 투자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오명환 부원장은 "민간 기업연구소의 경우 연구
개발비가 기업회계부문과 맞물려 기업의 목적에 따라 변화하는 경우가 많다"
며 "순수 연구개발비용만을 계산한다면 한국의 R&D 투자규모는 선진국에
비해 많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부원장은 "특히 민간 기업연구소들은 수익성과 사업성을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기본적인 R&D 투자를 게을리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미래 식량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을 바탕
으로 순수 R&D 투자를 크게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 산.학.연 역할분담이 이뤄져야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기업부설연구소는
4천8백10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중소.벤처기업 연구소가 전체의 77%를 차지, 총 4천13개에
달했다.

기업부설연구소를 만드는 기업은 세제지원, 자금지원, 병역특례 연구요원
지원 등의 혜택을 누린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의 경우엔 이런 혜택을 노리고 설립요건만 갖춰
"무늬만 연구소"를 설립하고 있다.

연구소 수에도 거품이 존재하는 것이다.

기업연구소에 대한 철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R&D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대다수 연구소의 경우도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특히 개별 연구소 차원에서가 아니라 연구소간 또는 연구소.대학.기업간
"역할분담"과 협조체제가 구축돼야 한다.

삼성종합기술원 손욱 원장은 "기술개발을 기업간의 단순한 경쟁관계로만
접근해선 곤란하다"며 "국내 "빅3" 기업부설연구소(삼성종합기술원,
LG종합기술원, 대우고등기술원)의 공통 개발과제는 공동연구를 통해 성과를
나눠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KIST 관계자는 연구소 대학 기업의 역할분담에 대해 "과학(기초연구)"은
대학이, "기술(현장적용)"은 기업이, "과학과 기술(공공연구)"은 연구소가
책임지며 3자가 밀접한 협력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R&D에도 "선택과 집중" 필요 =R&D 투자의 거품을 빼고 난 뒤 한정된
자원으로 R&D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두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선택과 집중"이다.

꼭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분야를 제대로 골라 자원을 집중시켜야 한다.

산업기술진흥협회 김승재 상무는 "출연연구소든 민간연구소든 대학이든
분야별 또는 기술별로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소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큰 밑그림을 그리는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택된 분야에 대한 집중투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효율적인 운영과 관리다.

산업기술평가원 임창만 실장은 "R&D 프로젝트를 건설공사에 비유하면
프로젝트를 기획(설계)하고 수행(시공)하는 것 못지 않게 관리(감리)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R&D 관리 전담조직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과학기술개발에도 "경영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정된 자원을 미래의 경쟁력으로 연결시켜야만 R&D 투자에
쓰이는 세금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장경영 기자 longru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