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훈 < 이화여대 의대 교수 >

근대이후로 사람들은 실용주의 사상을 신으로 모시고 살게 된 것 같다.

개인의 경제 사회적 활동의 최종 목적은 물질이고, 돈이 되지 않는 것은
무의미한 활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온통 물신주의에 빠져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이 증권에 발을 담그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돈을 잘 번 사람은 신지식인이 되고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부러움을 산다.

이러한 경제적 행위 자체가 나쁠 것은 없다.

오히려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보면 권장될 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우리가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고자 함일 것이다.

하지만 생활의 수단과 방법이 생의 중요한 것을 대치해 버리는 순간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하게 된다.

전철에서 노약자석을 관찰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엇으로 사는 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전철에는 분명히 노약자석을 지정해 놓고 있고 안내방송으로도 비워둘 것을
권고하고 있다.

노약자석을 비워 두자고 하는 것은 아무리 전철이 터져 나갈 정도로 사람이
많고 또 노약자가 그 전철안에 한명도 없다고 하더라도 비워두자는 의미로
나는 이해한다.

노약자가 그 전철안에 없으면 노약자석에 앉아도 된다는 의미는 분명 아닐
것이다.

경제적 논리로 따지면 이보다 더 불합리한 일이 있을까마는 사려 깊은
사람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철에 탄 노약자는 노약자석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이들 때문에 짧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속으로 낭패감을 느낄 것이다.

그 노약자가 당하게 되는 낭패감이 걱정된다.

전철 노약자석을 비워 두는 것은 같은시대를 살아가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배려와 애정의 표현이다.

비록 가장 비경제적인 일이라고 할지라도.

전용 주차장소 확보, 공공장소의 화장실 설치 등 일부이긴 하지만 지체
부자유자들을 위한 시설 확충도 소수에 대한 다수 정상인들의 희생과 양보가
요구되는, 비경제적 일이지만 더 없이 중요한 일이다.

적지에 불시착한 소수의 조종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더 많은 희생자들을
낼지도 모르는 군사 작전이 수행된다.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알면서도 물에 뛰어 든 사람들, 화재
현장에서 불속에 있는 아기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불속에 뛰어 든 소방대원들
의 살신을 우리는 본다.

나를 잊고 타인을 향한 가장 비경제적 행위들을 통해 이 사회는 비로소
동물의 사회가 아니라 사람의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억지일까.

온갖 상술에 놀아나는 새 천년의 의미를 돌이켜 보면서 올해에는 작은
일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져 보고자 결심해 보면 어떨까.

참다운 자아는 내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완성될 수 있다는
옛 성현의 말씀을 시험해 보는 한해가 되면 더욱 뜻깊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그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물질을 가져다 주지는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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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