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중에 C박사가 있다.

유명 종합병원 의사다.

작년초 부부동반 모임에서 그친구가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야 너 요새 무슨 고점매수인가 뭔가 하는 그거 강의 좀 해봐줘" 사양했지만
사모님네들이 오히려 더 열의를 보이는 바람에 간단히 즉석강의를 했다.

주식은 안하는 게 상책이다로 시작해서 고점매수 저점매도 위험관리 어쩌구
저쩌구 삼십분을 떠들었다.

그로부터 한참 지난 어느날 C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녁먹자고 해서 나갔더니 일전에 강의가 많은 도움이 됐다며 주식얘기를
꺼냈다.

"삼성전자를 10만원 돌파할 때 고점매수했는데 네 말듣고 20만원이 된 지금
까지 보유하고 있다. 역시 먹고 있을 때는 참는 게 옳다. ''이익은 길게''라는
네 말이 정말 맞는 말이다"

저명한 심리학자 누구의 이론과도 일치한다 등등 어려운 이론까지 소개하며
내 지론을 극찬했다.

함께갔던 집사람들도 간간이 말을 거들었고 그날은 티본스테이크도 맛있게
먹고 칭찬도 들어 흐뭇했다.

한참 지난 어느날 또 전화가 왔다.

"김원장, 나 지금 응급환자인데 전화치료 가능하냐?"

"야, 의사도 치료받을 때가 다 있나? 그리고 지금 많이 벌고있는 중이고
고점대비 크게 안떨어졌으니까 아직 이익실현할 때도 아닌데 대체 무슨
일이고?"

고점이 25만2천원이니 가령 이익의 절반을 시장에 되돌려준다고 생각해도
17만6천원에 저점매도하고 나오면 되는데 아직은 가격이 19만원 근처였다.

"그런데 말이야 21만원 올라갈 때 팔아버렸거든"

"그래 원칙을 지키는 게 쉬운일은 아이재? 그래도 지금 가격보다 높을 때
팔았으니 결과적으로 잘 됐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뉴스에 64메가D램이 개당 20달러를 돌파하고 대만지진으로 반사이익이
기대된다해서 24만원에 다시 샀거든"

C박사는 심각했지만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듣는 사례였고 여느 환자와 똑같이 C박사도 결국은 심리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지금부터라도 가격이 하락할때마다 조금씩 나누어서 팔아라. 한꺼번에
다 팔고 나면 오를 때 다시 사기 힘들어지니까 절대 한꺼번에 다 팔면
안된다"

그로부터 꼭 일주일 뒤에 이번에는 C박사 부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해외의학 세미나를 갔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주가를 보니 18만원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해주었던 얘기를 토씨하나 안 틀리게 그대로 들려주며 꼭
그대로 하라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열흘이 지났을까.

C박사 부인이 불쑥 클리닉으로 찾아왔다.

18만원이 잠시 깨질때 겁이 나서 다 던져버렸는데 다시 반등해서 22만원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미안해하는 부인에게 어려울 때 일수록 돈 생각하지말고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다시한번 약을 팔았다.

리스크관리, 분할매수매도 어쩌구..정말 지키기 힘들지만 이번만은 꼭
잘해보겠다며 부인은 돌아갔다.

최근 들은 얘기론 부인은 그 후에 코스닥종목에 분산투자를 해서 고점대비
상당부분들을 시장에 돌려주고도 매우 큰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손절매는 어려운 일이다.

제살을 도려내는 일인데 쉬울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살을 베는 게 낫다.

그런데 이것보다 백배 더 어려운 일이 벌고 있을 때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느닷없이 날아든 행복이 달아날까봐 안달하다가 대부분 몇푼 안되는 돈만
챙기고 나온다.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심리적 한계를 극복하며 원칙을 지키다보면
돈은 시장이 알아서 벌어준다.

해도 바뀌었으니 전화해서 이번에는 내가 밥을 한 번 사야겠다.

주식은 도를 닦는 일이라고 다시 한번 말해줄 것이다.

< 현대증권 투자클리닉센터 원장 한경머니 자문위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