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가앙등으로 또 한차례 오일쇼크가 걱정된다.

1년 전 배럴당 10달러 안팎 하던 국제유가가 지금 거의 그 3배가 됐다.

국내 도입 원유단가도 1998년 연평균 배럴당 13.7 달러에서 지난 해 16.9
달러로 오른 데 이어 올해 또 23달러로 오를 전망이다.

이는 물론 1973년과 1979년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1997년 불변가격으로 따져 유가가 종전 수준의 2배 이상씩으로
갑자기 올랐지만 지금은 규모나 속도가 훨씬 완만하다.

하지만 명목가격으로 약 2배, 불변가격으로 약 3분의 2 가량 유가가 올랐던
1990~91년 걸프전 당시 상황을 제3쇼크로 본다면 이번 것은 네 번째 오일쇼크
로 불러도 무리가 없다.

이번 쇼크는 어떤 이유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얼마나 파괴적일 것인가.

우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담합이 없을 경우 정상적 국제원유가 수준은
배럴당 5~10 달러 수준으로 평가된다.

1930년대 초부터 1973년까지 유가가 바로 이 수준이었고 지금은 그때보다
공급과잉현상이 더 심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70년대 오일쇼크 탓이다.

유가가 높게 유지되면서 경제적 타당성이 없던 유전들이 속속 개발됐다.

중동지역 유전의 손익분기점 유가가 배럴당 2달러인 데 비해 인도네시아는
6달러,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등은 7달러, 멕시코와 미국 텍사스는 10달러,
북해는 11달러, 러시아와 중국은 14달러 등이지만 고유가 덕분에 모두 성업
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경제위기로 수요가 붕괴되며 가격이 10달러 선까지
하락하자 사실 누구보다 비중동 산유국들이 고통받게 됐다.

이로써 러시아는 부도를 냈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정권이 바뀌었으며,
멕시코에서는 오는 7월 대통령 선거에서 70년 권좌의 제도혁명당(PRI)이
밀려날 전망이다.

또 미국에서는 대형 석유회사들 이윤이 종전의 10%로 폭락하며 기업합병과
자산매각이 줄을 이었다.

중동 산유국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 중동 5개 산유국들에겐 세 가지 대안이 있었다.

첫째는 유가를 파격적으로 낮춰 다른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몰아내고 이후
10달러 판매가를 유지하며 13%의 안정적 수익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외채 500억 달러를 비롯해 모두 1,100억 달러의
설비증설 투자비가 든다.

대신 러시아, 남미, 아프리카, 미국 등 석유산업은 고사된다.

둘째는 미국 등에게 중동지역 유전개발권을 내주고 경제개발자금과 기술,
수출시장을 제공받는 것이다.

물론 이는 OPEC 해체와 가격통제권 포기를 의미한다.

동시에 사회개방과 민주화, 즉 정권불안을 의미한다.

셋째는 다른 산유국들의 협조아래 생산량을 감축하고 유가를 올리는 것이다.

결론은 당연히 세 번째 것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압둘라 왕자가 1998년 미국을 방문하고, 이어 미국 석유회사
최고경영자들이 잇따라 사우디를 찾더니만, 1999년 2월에는 미국 빌 리차드슨
에너지장관이 사우디를 방문했다.

그리고 다음달에 OPEC 생산감축 합의가 확정 시행됐다.

종전의 오일쇼크들과 달리 이번 것은 미국의 작품일 가능성이 큰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미국은 1석3조 이득을 봤다.

자국 석유산업을 구하고, 러시아 옐친 정권과 멕시코의 현 여당을
성공적으로 지원했으며, 대러시아 투자실패로 도산할 뻔했던 롱텀캐피털
매니지먼트(LTCM) 헤지펀드 구제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물가인상률을 3% 안에서 방어했다.

주가며 실업률, 경제성장률도 영향받지 않았다.

물론 현 수준이 지속되면 미국경제도 상황은 달라질 가능성이 높긴 하다.

이렇게 봤을 때 앞으로 국제유가는 미국의 관리 아래 배럴당 20~25달러
선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국 경제다.

한국은 에너지탄성치, 즉 추가적 GDP 창출에 드는 추가적 에너지 소비량이
1.18이어서 미국의 0.33에 비해 유가인상에 매우 취약하다.

결국 또 한번의 외환위기를 간신히 피해 가는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주목변수는 중국의 턱에 찬 재정적자다.

사태가 너무 심각해지면 유가가 또 한차례 요동치며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