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 패러다임의 대전환 ]

도요타 자동차의 명성은 도요타만의 것이 아니다.

도요타의 공급사슬을 구성하는 모든 공급업체들이 함께 누려야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제품 생산에 수많은 업체가 참여하는 데도 마치 최종 생산단계 업체가
생산하는 것처럼 인식했다.

그러나 이제는 경영 패러다임, 즉 시각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시각이 바뀐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기업구도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먼저 한 기업이 담당하는 생산단계의 범위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최근의 추세는 기업들이 핵심역량을 제한된 범위의 생산단계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아웃소싱(외부조달)한다.

도요타는 70% 이상을, 델컴퓨터는 최종 조립 이외의 모든 단계를, 그리고
시스코시스템즈는 1백%를 아웃소싱한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제품은 더 이상 어느 특정 업체의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또 공급사슬을 구성하는 업체들간 관계가 주종 관계에서 평등 관계로
변화되고 있다.

과거 공급업체들은 대부분이 설계기술이나 생산기술을 독자적으로 갖추고
있지 않았고 완성업체가 설계도면을 제작하고 또 생산방식을 지도했기 때문에
비록 공급업체가 담당한 생산단계라 할지라도 구매업체가 그 크레딧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 업체가 모든 기술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설계기술과 생산기술을 갖춘 공급업체들이 늘고 있다.

따라서 공급업체들도 구매업체만큼이나 제품설계와 생산에 공헌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의존하는 평등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웃소싱의 증가는 공급사슬 구조를 점차 복잡한 계층화, 네트워크화로
만들어 가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관리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더욱이 기업은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도요타는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공급 사슬상의 기업간 공간적
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JIT를 도입했다.

다시 말해 모든 공급업체를 도요타 공장과 근거리에 있게 해 정보와
재화수송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솔루션이 정보기술로 바뀌고 있다.

시스코시스템즈는 전세계에 4백50여개의 공급업체와 거래하고 있다.

이들 공급사슬상의 모든 업체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마치 하나로 통합된 단일
기업으로 운영되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기업들 사이에 고객의 수요와 관련된
정보가 주문이라는 형태로 전달되는 데 수일이 걸렸었지만 시스코는 그러한
공간적 거리를 정보기술로 완전히 제거했다.

그뿐 아니다.

지구의 곳곳에 있는 시스코의 모든 종업원들의 업무실적과 비용지출이
실시간으로 집계가 되고 있으며 종업원에 대한 보험료처리, 여행스케쥴
관리까지도 인터넷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교육 또한 마찬가지다.

집합식의 교육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종업원은 공간적으로 어디에 있다
하더라도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효과적인 공급사슬관리(SCM)를 위해서는 공간적인 거리를 제거해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고 제거돼야 하는 또
하나의 거리가 있다.

그것은 공급사슬상의 조직간에 존재할 수 있는 불신이라는 마음의 거리다.

이러한 공급업체와의 관계를 영어에서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의미로
arm''s length relationship 이라고 한다.

불신이 존재하는 한 조직간의 진정한 정보공유는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불확실성은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시간을 지체시키게 된다.

마음의 거리는 마음으로 해결해야 한다.

포드 자동차는 막대한 광고비를 들여 월스트리트 저널에 공급업체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포드 자동차의 품질에 대한 이들의 공헌에 감사를 표시했다.

크라이슬러가 도산위기에서 회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최고경영자가 열린
마음으로 접근, 공급업체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급업체들은 원가절감과 품질개선을 위한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크라이슬러는 신속한 응답과 장기계약으로 보답했다.

손병규 < 숙명여대 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