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문호 발자크(1799~1850)는 20여년을 구애한 끝에 백만장자인
한스카와 결혼했다.

이들의 인연은 귀족부인이던 한스카가 장난삼아 청년문인 발자크에게
발신지가 없는 "모르는 여인의 편지"를 띄우면서 시작됐다.

"일간지에 한마디만 내주시면 당신이 제편지를 받았다는 것과 제가 당신에게
계속 편지를 쓸수 있다는 확답으로 알겠습니다. 연락하실 때는 다음과 같이
서명하십시오. AIE...H. B."

발자크는 1882년 12월 9일자 신문광고를 빌어 이렇게 답했다.

"드 B는 그에게 보내진 서신을 받았다. 그는 오늘에서야 그것을 확인해줄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답장을 보낼 주소를 몰라 안타까워하고 있다. AIE...H. B"

생각의 속도로 움직이는 디지털시대에 대한 반동일까, 한동안 사라진 듯하던
편지가 되살아나는 건 주목할만하다.

1997년 가을 "편지"를 시작으로 지난해엔 "화이트 발렌타인" "중앙역"
"병속에 든 편지" 등 국내외 영화와 미.일판 ''러브레터''가 잇따라 개봉됐다.

"화이트 발렌타인"에선 박신양이 연인을 잃은 슬픔을 비둘기 다리에
띄워보내고, "병속에 든 편지"에선 케빈 코스트너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병에 담아 바다에 띄운다.

우연히 발견된 연애편지 한통이 타성에 젖은 마을사람들을 생기있게 한다는
내용 미국판 러브레터도 종이편지의 효용을 일깨운다.

터키 사람들은 요즈음 과거로부터의 편지를 받는다고 한다.

터키 체신부가 밀레니엄을 앞두고 1986~1987년에 접수한 "2000년을 위한
편지"를 올들어 배달해주는 바람에 약 1만5천명의 사람들이 당시 애인,
정치인, 태어날 아기에게 쓴 편지를 받고 아련한 옛시절의 꿈과 소망을
기억하며 놀란다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편지를 어떻게 쓸까"라는 글에서 거짓된 말을
얼기설기 엮지 않고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사실대로 쓰면 절실한
마음이 전해지리라고 적었다.

전화와 E메일이 있다곤 해도 종이편지의 애틋함과 간절함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10년혹은 20년 뒤에 누군가가 받게될 편지를 쓰노라면 숙연하고
경건한 마음이 되지 않을까.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