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년의 첫 봄을 맞는 여성들은 밝은 옷차림 덕분에 아무 근심도
걱정도 없는듯 화사하며 기쁨이 넘쳐 보일 것이다.

지난 세기말 몇년 동안을 뒤덮었던 불안과 초조, 혼란은 새 시대에
접어들면서 모두 버리고 온 것처럼 말이다.

1999년에는 미래에 대한 낙관과 비관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혼재돼 있었고
패션 또한 양쪽 모두를 보여줬다.

그러나 올 봄 패션에는 환한 빛만이 남아 있다.

뉴 밀레니엄을 여는 봄, 디자이너들은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에 눈을
돌렸다.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섹시해 보이는 옷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 19세기말 드레스처럼 너무 무거워 보이지 않으면서 편안한 옷이라고
디자이너들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스타일이 유행할 것이라는 예감은 염색공장이 갑자기 바빠질 만큼
다채로운 컬러를 등장시켰고 꽃무늬 프린트와 러플장식을 다시 여성복에
불러들이고 있다.

또 시폰처럼 얇고 하늘하늘한 옷감이 사람들의 눈길을 뺏을 준비를 하고
있다.

컬러는 21세기에 대한 사람들의 긍정적인 기대를 가장 앞서 표현해 주는
요소다.

회색 등 무채색이 사라지는 대신 눈부시도록 밝고 경쾌한 색상이 거리를
수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린 베이지 핫핑크 레몬 바이올렛 라임 등 봄내음을 가득 담은 화사한
색상이 한판 축제를 벌일 것이다.

패션디자이너들은 봄 유행색상을 라이트 컬러(Light color)에서 한걸음
나아간 브라이트 컬러(Bright color)라고 부른다.

단순한 핑크가 아닌 핫핑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컬러풀한 색상들이
서로 콤비네이션을 이룬다.

이미 많은 해외의 유명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브라이트 컬러 시대에
돌입했음을 선언했다.

구치의 디자이너 톰포드는 분홍색 새틴 블라우스와 반짝거리는 같은 색
바지를 매치시켜 무대위에 선보였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연녹색과 핑크, 베이지를 조화시킨 의상으로 패션인들
을 매혹시켰다.

미국디자이너 도나카렌과 마이클 코어스도 파스텔 계열의 색상으로 자신들
의 컬렉션 무대를 채웠다.

봄옷이 내걸린 패션숍 쇼 윈도에는 여기저기에 큰 꽃이 필 예정이다.

옷감에 동양화처럼 붓으로 그린 꽃무늬, 인상파 화가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꽃, 구슬로 수놓은 꽃장식 등 원피스부터 바지, 셔츠까지 플라워 프린트로
가득찰 것이다.

작년 봄에도 플라워 패턴은 존재했지만 더욱 크기가 커지고 강렬해졌다는게
특징이다.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고 절제된 옷으로 유명한 독일 브랜드 질 샌더 마저
이번 춘하 콜렉션은 하와이안 꽃무늬 프린트로 장식했다는 사실에서 그 붐을
짐작할 수 있다.

브라이트 컬러와 꽃문양 외에 올 봄 여름 패션을 주도할 키워드는 뉴
럭셔리(New Luxury)다.

삼성패션연구소 관계자는 "21세기 패션과학은 인간의 육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정신을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패션 테크놀로지가 지금까지처럼 인간의 편리함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환경친화적이면서 본능과 감성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감성만족을 통한 새로운 럭셔리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자연의
편안함이 느껴지는 고급 소재와 정성스러운 손길이 들어간 실루엣에 열광
한다.

겉으로 화려함을 지향하는 옷보다는 캐시미어 같은 최고급 천연소재를 써
부드러운 감촉이 그만인 소박한 디자인의 옷들이 더 인기를 얻을 전망이다.

70년대의 낭만적인 엘레강스 부티크 스타일과 민속풍 히피룩은 트렌드의
하나로 계속 남아 있는다.

화려한 컬러감각과 패턴이 이번 시즌의 패션 키워드와 맞아떨어지기 때문
이다.

반면 90년대를 강타했던 스포티 캐주얼 감각은 퇴조하는 느낌이다.

최근 모든 옷에 스포츠 스타일이 가미됐기 때문에 완전히 사라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성스러움이 좀더 부각될 전망이다.

< 설현정 기자 so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