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아무리 강건했던 남자라도 중년을 넘어서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
으로 쉽게 다치게 마련이다.

매사에 한창 때처럼 자신감이 생기지도 않고 실제 힘이 부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일선에서 물러나 퇴직 이후를 염두에 두게 된다.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하루하루를 맞이하면서 이제는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중년의 통과의례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도 분명 정도의 차이는 있다.

건강에 자신감을 가질 수만 있다면 갱년기도 갱년기 나름이다.

단지 수명연장이 목적이 아니라 인생 말년을 활기차게 보내겠다면 남성
갱년기와 "일전불사"를 외칠 일이다.

이와 관련, 선진 학계에서는 갱년기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남성 및 여성
호르몬 투여 요법을 연구중이어서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 남성 갱년기의 특성 =남성의 갱년기는 여성과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

먼저 여성의 갱년기는 폐경 전후에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나타난다.

마침내 폐경이 되면 안면홍조 골밀도감소 우울증 요실금 빈맥 현기증
만성피로 질분비물감소 등의 증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이같은 폐경기증후군을 가장 확실히 치료하는 방법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복용하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는 여성과 달리 호르몬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개인차도 커서
이렇다 할 임상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성도 나이가 들면서 남성호르몬, 성장호르몬, 부신
에서 생성되는 DHEA를 포함한 여러 호르몬, 멜라토닌 등이 감소되고 이로
인해 인체기능이 서서히 퇴화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근육량과 근력이 저하되고 골량이 감소하며 체지방이 증가한다.

특히 인체 중앙의 뱃가죽이나 장기에 지방이 축적돼 배가 튀어나오는 복부형
비만이 초래된다.

이런 근육 및 근력의 저하와 복부비만은 당 및 지방의 대사에 이상을 초래해
당뇨병과 관상동맥질환 등 성인병을 증가시킨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서서히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고 마침내 여성에 비해
약 7~10년 더 일찍 죽게 된다.

또 나이가 들수록 성욕 및 성적행위의 횟수가 줄어든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상식과 달리 성기능은 쇠퇴하는 여러 능력 중에서 가장
오래 남는다.

50~1백세 노인의 성생활에 대한 한 조사에서 70세 노인중 70%가 1주일에
한번 부부관계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신체적 정신적 불안정성에 의해 75세 이상의 50~75%에서 발기부전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정력에 좋다면 웅담 해구신 등의 보약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고
굼벵이도 잡아먹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남성호르몬 보충요법의 효과 =남성은 나이가 들어도 생식능력이 유지
된다.

찰리 채플린, 파블로 피카소, 말론 브랜도, 앤서니 퀸 등은 늙은 나이에
자식을 낳았다.

물론 노인의 경우 정자 숫자는 크게 줄지 않더라도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
지고 기형 정자가 증가하는 등 질적 저하를 보인다.

남성은 대개 50세가 넘으면서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이 점차 감소
하게 된다.

75세에는 25세 때의 약 3분의2로 준다.

게다가 이 호르몬에 잘 감응하던 남성호르몬 수용체도 나이가 들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숫쥐의 경우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남성호르몬 수용체의 기능이 크게 떨어져
감응예민도가 무려 1백분의1로 준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호르몬이 감소될 때 <>시상하부-뇌하수체-성선으로
이뤄지는 호르몬 분비기능의 저하 <>부신 기능의 쇠퇴 <>성장호르몬과 인슐린
유사호르몬 기능의 감퇴 등이 초래되고 이로 인해 노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노화학자들은 남성에게도 폐경기 여성처럼 남성호르몬
보충요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아직 장기간에 걸친 연구결과는 보고된 바 없어 확립된 학설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호르몬 보충 요법이 중장년 남성에게 손해보다는
이득을 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 남성에서의 여성호르몬의 역할 =폐경기가 지난 여성의 여성호르몬 농도는
같은 연배의 남성이 갖고 있는 여성호르몬 농도의 5분의1~10분의1에 불과
하다.

여성호르몬은 말초조직에서 남성호르몬이 변해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호르몬이 부족해질 경우 여성들은 젊었을 적 남성보다 더
뛰어났던 암기력을 잃고 심한 건망증을 앓는다.

치매현상도 남성에 비해 2~3배 더 많이 나타난다.

이는 남성에게 있어서도 여성호르몬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할
것이라는 단서를 제공한다.

즉 여성호르몬은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고 뼈의 소실을 방지하며 기억력을
증강시키고 치매를 예방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남성환자에게 여성호르몬을 투여하는 임상시험이 한창 진행중
이다.

문제는 여성호르몬의 적정 투여량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심근경색증을 갖고 있는 환자들에서는 오히려 여성호르몬이 더 높고
이로 인해 남자에게 여성형 유방이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었다.

일부 제약사에서는 뇌 뼈 심혈관계 등에는 에스트로겐과 같은 좋은 효과를
보이면서 여성형 유방은 초래하지 않는 여성호르몬 유사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아울러 근력과 남성다움을 증가시키면서 심혈관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남성호르몬 수용체를 변조하는 약물도 만들려 하고 있다.

이같은 연구가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새 밀레니엄시대에는 남성도 활기찬
갱년기를 보낼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 도움말=임승길 연세대 내분비내과 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