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문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일뿐만 아니라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일들도
많았다.

인간의 일이 늘 그렇듯 세치 혀에서 무심코 나온 말 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는 법이다.

99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슈의 한가운데는 언제나 말이 있었다.

"쌍끌이" "묻지마"같은 신조어가 유행했고 옷로비 사건과 관련해서는
끝없는 거짓말 행진이 이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의 말을 통해 지난 1년동안의 사건 사고 에피소드들을 정치 경제
사회 등 분야별로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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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난의 해"

올해를 한마디로 함축한 말이다.

검찰과 관련된 사건이 유난히 많았던 해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말도 많았다.

대전 법조비리부터 시작해 옷로비 파문, 검찰 간부의 파업유도 발언,
김태정 법무장관의 경질, 옷로비와 파업유도 청문회, 특별검사 등 나라
전체가 온통 검찰 얘기로 물들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옷로비 청문회때 연정희씨가 말한 "미안합니다. 몸이 아파서"는 개그의
소재가 되면서 올해 최고의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이밖에 고관대작 집을 턴 김강룡사건, 인천호프집 화재사건 등 시끄러운
기묘년이었다.

올 1월초에 터진 대전법조비리 사건은 검찰의 험난함을 예고했다.

이 사건과 관련, 1월27일 심재륜 대구고검장이 "검찰에 대한 국민의 비난은
과거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던 검찰의 업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김태정
검찰총장에 일침을 놓았다.

이를 항명이라며 심 고검장을 면직시킨 김 총장은 법무장관으로 영전했으나
6월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으로 보름만에 장관 옷을
벗는다.

당시 한나라당 안택수 대변인은 "김 장관이 "불사조 장관"이 됐으나 이제
정권 내부의 "미운 오리새끼"로 산소호흡기에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식물 장관"이라고 비꼬았다.

김 장관은 퇴임하면서 "짧지만 긴 역사를 남기고 간다"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이에앞서 옷로비 사건 초기인 지난6월 김대중 대통령은 "마녀사냥식으로
몰고간다"며 언론의 보도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가 나중에 사실로 드러나자
사과했다.

8월은 청문회의 달로 말의 잔치가 이어졌다.

옷로비 청문회때 연씨와 배정숙씨등 네명의 여인이 모두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한다"고 하고서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해 국민을 헷갈리게 하더니 결국
위증혐의로 기소될 처지에 놓였다.

"비 올때는 우산을 써라"(배씨), "미안합니다. 제가 몸이 아파서"(연씨)는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유행어가 돼 버렸다.

옷로비의 성격 규정을 둘러싼 말싸움도 세인을 웃겼다.

검찰은 "실패한 로비"라고 했으며 특검팀은 "포기한 로비"라고 했다.

폭탄주를 먹고 파업유도 발언을 한 진 전공안부장은 청문회에서 "양주만
마시면 독해 맥주와 섞어 먹은 것"이라고 폭탄주 정의를 말하는 강단도
보여줬다.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은 "공작 정치를 일삼던 안기부의 역할을 새정부에서는
검찰이 떠맡아 설거지하고 있다"고 검찰을 강하게 비난했다.

파업유도 발언은 검찰문화로 대변되는 대낮 폭탄주 문화가 사라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검찰은 낮에 술을 아예 마시지 않으며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대해 일부 검찰관계자는 "사람이 문제지 폭탄주야 무슨 죄가 있나"고
검찰수뇌부의 과민반응을 비아냥 거리기도했다.

이밖에 IMF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불끄러
들어간 소방수를 방화범으로 몰수 있나"며 한나라당 추미애 의원의 추궁을
비껴갔다.

도둑 김강룡에게 서울사무소에 있던 돈을 털린 유종근 전북지사도 인구에
자주 회자됐다.

특히 그는 "클린턴이 색소폰을 불면 멋지고 내가 오케스트라 지휘봉을
잡으면 추한 것이냐"며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립기념 연주회에서
지휘를 맡는등 돌출행동이 잦았다.

< 김문권 기자 mk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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