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문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일뿐만 아니라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일들도
많았다.

인간의 일이 늘 그렇듯 세치 혀에서 무심코 나온 말 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는 법이다.

99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슈의 한가운데는 언제나 말이 있었다.

"쌍끌이" "묻지마"같은 신조어가 유행했고 옷로비 사건과 관련해서는
끝없는 거짓말 행진이 이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의 말을 통해 지난 1년동안의 사건 사고 에피소드들을 정치 경제
사회 등 분야별로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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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정치권은 숱한 유행어와 인구에 회자되는 말들을 낳았다.

극단적인 여야 대치와 옷로비.파업유도 의혹, 언론문건 파동, 내각제 문제
등으로 세기말 정치권이 거친 풍랑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은 529호 사건으로 수렁에 빠졌다.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은 "이제 배 째라 밖에 없다"며 강경투쟁을 선언했고
여권은 "가출한 야당을 찾는다"고 응수했다.

1월에 열린 경제청문회에서는 "불끄러 들어간 소방수가 불을 못껐다고
방화범으로 몰아서야 되느냐"(강경식 전부총리), "계백장군에게 백제 패망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김인호 전 청와대경제수석)는 말이 화제가 됐다.

이어 국민연금 등을 둘러싸고 정책혼선이 계속되자 한나라당 김진재 의원은
"초보운전인 줄 알았는데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고 있다"며 여당을 겨냥했다.

도.감청 문제로 정국이 혼미해지자 이재오 의원은 "국민의 정부는 전화를
도청하는 정부"라고 꼬집었다.

여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야당이 장외집회에서 "영남 푸대접론"을 펴자 국민회의는 "나라는 없고
고향만 있느냐"(이영일 대변인)고 공격했다.

또 한나라당이 맹물전투기 추락사고를 따지기 위해 다른 상임위를 거부한
채 국방위만 열자고 주장하자 국민회의 박상천 총무는 "학생이 학교에서
영어수업은 안받고 체육수업만 받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여권 내에서는 내각제와 합당 문제가 화두였다.

내각제 연내 개헌이 유보되자 자민련 김용환 의원은 "장수가 도망쳤으니
누가 성을 지키랴"며 한탄했다.

국민회의는 "여자친구와 손목도 잡고 키스도 하다가 완전히 마음이 맞으면
결혼하는 것 아니냐"(이만섭 총재권한대행)며 끊임없이 자민련에 합당을
권유했다.

그러나 "파스칼이 감기들었는지 세상이 감기들었는지 아리송하다"(이양희
대변인)며 언론의 합당보도에 불만을 표시하던 자민련은 끝내 합당을
거부했다.

설화사건도 줄을 이었다.

천용택 전 국정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말해 결국 경질됐다.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은 폭탄주를 마신 뒤 "조폐공사 파업을 유도했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진 전부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양주가 독해 맥주를 타서 마셨다"는 독특한
"폭탄주론"을 펴 세간에 화제를 뿌렸다.

김대중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맹비난하다 페인트세례를 받았던 김영삼
전대통령은 전두환 전대통령으로부터 "주막 강아지"라는 말까지 들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현정권의 덮어 씌우기는 전형적인 빨치산 수법"
이란 발언이 여당의 반발을 불러오자 "(빨치산이)아니면 됐지"라고 말해
정치권에서 "아니면 말고"가 유행했다.

옷로비 청문회에서 "김봉남입니다"(디아지너 앙드레김), "미안합니다"
(배정숙씨)등의 증언들은 지금도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 메뉴이다.

< 김남국 기자 nk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