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이사제 도입을 검토중이라고 밝힌 김호진 노사정위원장의 발언은 그
진의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근로자들의 주인의식을 높여 노사공동체 의식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취지와는 반대로 공연히 노사갈등만 표출되기 십상인 우리 산업현장의
실상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문제를 놓고 노사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마당이라 더욱 그렇다.

독일을 비롯한 상당수 유럽국가들에서 노동조합 또는 종업원대표가 기업의
최고의사결정 과정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국가들
과는 달리 노사관계가 아직 성숙되지 않은 우리로서는 근로자이사제 도입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본다.

비록 당장 추진하는 것은 아니고 중장기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것이 노사정위
측의 해명이지만 기본적으로 방향 자체가 올바른 것인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근로자이사제 도입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보다 근본적인 까닭은
대주주의 고유권한인 경영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즉 노동조합은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을 통해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지 기업경영에까지 개입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만일 종업원뿐만 아니라 납품업체 채권금융기관 소비자 지역사회단체
정부기관 등 입장이 서로 다른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저마다 경영에
개입하겠다고 나설 경우 효율적인 경영은 처음부터 불가능해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경영자는 경영성과에 대해 오직 주주에게만 책임을 지우며
기업의 생존, 더 나아가 성장만이 중장기적으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사실이다.

이점에서 각국의 기업지배구조에 법적.제도적 기본틀이 될 예정인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의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도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대신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가지 강조할 점은 그렇지 않아도 외국인투자자들이 국내 노조의
전투적인 성향를 몹시 꺼리고 있는데 만일 근로자이사제까지 도입될 경우
외국인투자가 크게 줄어 우리 경제의 빠른 회복과 국제경쟁력 강화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노조를 비롯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책당국은 근로자이사제 도입이 이처럼 엄청난 부작용과 혼란을 몰고올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