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과 함께 했던 꿈과 이상 또한 이제 가눌수 없는 고독이 되어 제
여생의 반려로 남게 되었습니다(중략)..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대우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한때 샐러리맨의 우상이었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짤막한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와함께 대우 그룹도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대우에서 보듯 기업은 일종의 생명체다.

환경에 대해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한국 기업 성쇠는 미.일에 비해 훨씬 극심했다.

지난 65년 국내 1백대 기업에 낀 곳 중 90년대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13개에
불과했다.

30년간 생존율이 13%에 그쳤다.

미국(21%)이나 일본(22%)에 비해 훨씬 낮은 수치다.

그만큼 경영 환경이 급변했으며 경쟁이 치열했다는 반증이다.

한국에서 근대적 기업이 탄생한 것은 50~60년대로 볼 수 있다.

기업인들은 물자부족 상태였던 당시 면방직 제분 제당 등 이른바 3백사업에
진출해 큰 돈을 벌었다.

일부는 일본인 귀속재산을 불하받아 사업기회를 얻었다.

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계획은 한국에서 대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대기업이 앞장서서 시장을 개척하고 정부가 이를 독려하는 한국식 성장방식
이 이 시기에 형성됐다.

섬유 합판 가발 등 노동집약적 사업을 벌이는 기업들이 급속히 성장해
나갔다.

동명목재 금성방직 경성방직 대성목재 동일방직 제일제당 제일모직 삼양사
등이 이 시기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었다.

60년대말에서 70년대초에 걸쳐 기업들은 전자 자동차 기계 조선 시멘트 철강
석유화학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선언 이후 한국의 산업구조는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위주로 빠르게 바뀌었다.

3차 5개년경제계획(72~76년)이 시작되기 전인 71년 37.3%에 불과했던
중화학공업 비중은 76년 45.6%로 높아졌다.

중동건설붐이 일면서 건설업체들도 급속도로 성장기반을 닦았다.

재벌로 표현되는 대규모 기업집단이 형성된 것은 이 때다.

삼성전자 삼성전관 삼성전기 삼성코닝 LG전자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써비스
포항제철 등 현재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주력기업이 이 시기에 대거
탄생했다.

80년대는 중화학 공업에 대한 과잉투자가 해소되면서 제조업이 한단계
도약한 시기였다.

금융 보험사 등 서비스업체들의 성장도 두드러졌다.

80년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권위적인 방법을 동원, 자동차 발전설비 등
중화학 분야의 과잉투자를 조정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포항제철등 한국의 간판기업들은 유가 쇼크의
후유증을 딛고 경쟁력을 높여나갔다.

삼성생명 대한교육보험 등 금융기관들도 급속히 그 기반을 넓혔다.

90년대는 정보통신의 시대다.

SK텔레콤 LG정보통신 데이콤 하나로통신 삼성SDS 등 정보통신기업들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며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다.

새롬기술 다우기술 다음커뮤니케이션등 인터넷업체들의 도약도 눈부시다.

그룹식 선단경영체제가 해체되면서 벤처기업들이 대거 탄생, 경제성장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공병호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기업의 성쇠는 외부 환경변화라는 도전에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응전하는가에 달려있다"며 "끊임없는 변화만이 지속적
성장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 강현철 기자 hckan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