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저물어가고 있다.

반만년의 한국 역사에서도 가장 역동적이었던 한 세기가 이제 막을 내리는
중이다.

그 일몰의 장려함을 배경으로 수많은 사건과 사연들의 장면 장면이 파노라마
처럼 지나간다.

저마다 ''20세기는 OO의 세기''라고 주장하는 장면들이다.

과연 한국에 있어 20세기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은자의나라 한국은 지난 세기에 비로소 은둔에서 벗어나 세계사회
의 일원이 됐다.

이는 곧 근대화,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백성에서 시민으로''의 ''계급적 변신''이 일어났다.

세기의 반환점에서는 서양식에서 수입된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국토를 할퀴어
결국 민족분단의 비극을 빚어내기도 했다.

문화면에서도 서양의 ''-이즘''들이 지배 이데올로기 노릇을 했다.

그 중에도 경제분야의 근대화, 서구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잠시 1백년전으로 돌아가보자.

"거리에는 아버지들의 무기력을 본받고 있는 때묻은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수도로서의 위엄을 생각할 때 그 불결함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구한말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조선기행기''에서 1백년 전 서울 거리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의 서울 거리에서는 연상이 안되는 풍경이다.

이같은 변혁을 몰고온 힘은 무엇이었는가.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근원이 된 힘은 ''기업가 정신''
이었다.

무에서 유를 일궈내는 불같은 정신의 소유자들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도
없었다.

한국의 20세기는 ''기업가 정신의 세기''였던 것이다.

한국에 근대적 기업의 뿌리는 내린 것은 1896년 서울 배오개에 문을 연
박승직 상점이다.

1905년에는 동대문시장 상인들로 구성된 광장주식회사가 설립됐다.

그러나 본격적 형태의 주식회사 효시는 1919년 설립된 경성방직이다.

이 회사는 후에 섬유, 언론, 금융의 세 부문을 거느리면서 기업집단의
원형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의 기업가정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일제가 식민통치의 수단으로 기업가를 육성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가 3.1운동 이후 본격적인 산업정책을 시행한 것도 한국인 상층부
를 일제에 대한 협조자로 끌어들이자는 동기였다.

게다가 일제는 한국의 민족자본을 육성하기보다는 일본자본 유치를 통해
한국을 산업화하려 했다.

일본 자본의 진출에 대해서는 장려금 지급, 조세 인하 등의 혜택을 주었다.

이런 정책들이 결과적으로 한국인 기업가의 발육을 저해했다.

한국에서 기업가 정신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
그 중에서도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 기업가 정신은 비단 기업인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관료들도, 근로자들도 모두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돼 있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부터가 기업가 정신에 충일한 혁명가였다.

여기에 이병철 정주영 등 걸출한 기업인들이 경제개발의 전면에 나서면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드라마가 비로소 막을 올렸다.

이후 30여년 동안 이들의 기업가 정신은 지칠줄 모르는 성장의 동력을 토해
냈다.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곳곳에서 산을 뚫고 바다를
메우는 국토개발사업이 벌어졌다.

가발, 신발에서 시작한 수출산업은 자동차 전자 선박 등으로 말을 옮겨타며
전세계에 ''메이드 인 코리아''를 뿌렸다.

한때 미국의 원조에 기대야 했던 나라가 어느새 미국의 위협적인 경쟁국중
하나로 솟아올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들 1세대의 기업가 정신은 낡은 테제가 되기
시작했다.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안티 테제, 즉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런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 동안의 성공신화에 도취해 정부 기업 개인이 모두 샴페인만 터뜨렸다.

그 결과는 불과 4~5년의 축적기간을 거쳐 97년 외환위기라는 형태로
폭발했다.

그리고 그 폭발력은 기업가 정신의 소생이 우려될 만큼 위력적이었다.

이제 보름 뒤로 다가온 새 천년에 한국이 가장 우선해야 할 과제가 ''새로운
기업가 정신의 발현''(제임스 루니 템플턴투신운용 사장)인 것도 이런 까닭
에서다.

< 임혁 기자 limhyuc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