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합작 정유업체인 BP 아모코사는 세계 석유업계에서 선두 그룹에 낄
만큼의 덩치가 못된다.

세계 시장은 엑슨 모빌, 셰브런, 텍사코 등 미국 경쟁사들과 유럽의 쉘 등
이른바 오일 메이저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유전 개발 프로젝트만 해도
이들 메이저의 배타적인 전유물로 돼 있다.

그런 아프리카의 앙골라에서 BP 아모코사가 최근 메이저들을 제치고 대형
유전 개발 프로젝트들을 잇달아 따냈다.

앙골라는 엑슨 모빌과 셰브런이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하고 있는 곳이었다.

BP 아모코가 이들을 제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 나라의 사회 개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 외곽 쌓기가 주효한 덕분
이었다.

BP 아모코측은 앙골라가 오랜 내전으로 인해 사회 복구 작업이 산적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는 유엔개발프로그램(UNDP)에 적절한 지원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도록
요청했다.

그 결과로 지난 97년 80만달러를 들여 폐허로 변한 어촌을 복구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어선도 수리해 줬다.

지역 은행들을 어민들에게 연결시켜 저리 자금을 대출해 주게끔 주선하는
일을 맡아 하기도 했다.

앙골라 정부는 BP 아모코사가 이처럼 지역 개발사업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준데 감동했다.

이후의 굵직한 유전 관련 프로젝트들을 BP 아모코사에 맡기게 된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런 식으로 개도국의 지역 개발 사업에 참여해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고,
궁극적으로는 사업 기회로 연결시키는 기법을 쓰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앙골라에서 BP 아모코에 일격을 맞은 셰브런이 중앙 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에서 사회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그런 사례들중 하나다.

셰브런은 UNDP가 주관해 추진중인 비즈니스 센터 건립 프로그램에 지난해
50만달러를 기탁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셰브런 외에 시티은행 등도 동참하고 있다.

시티은행은 카자흐스탄의 벤처 기업가들에게 자금을 대출해 주는 프로그램
에 참여중이다.

대형 프로젝트만이 아니라 소소한 각종 캠페인성 행사를 적절히 후원해
사업 기반을 다지는 경우도 있다.

의류업체인 리바이 스트로스는 최근 폴란드에 에이즈 치료 기금으로 4만
달러를 기부했다.

폴란드에는 리바이 스트로스의 공장이 있다.

이 회사는 이 밖에도 중동과 아프리카 각지에서 다양한 사회 사업을 펴고
있다.

제약회사인 존슨 앤드 존슨은 러시아의 심장 과학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을 후원중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민간 차원의 개도국 지원에 나서면서 개도국권에 대한
민간 후원금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개도국들에 흘러들어간 민간 지원금은 90년에만 해도 4백36억달러에 불과
했다.

그러나 97년에는 2천5백20억달러에 달했다.

반면 세계은행 등 공공 기관을 통해 97년중 개도국들에 지원된 자금 규모는
7백70억달러에 그쳤다.

개도국들에 대한 민간 후원금이 급증하고 있는 데는 몇몇 부호 기업인들의
거액 기탁도 한몫 거들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 총수인 테드 터너는 지난 97년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가운데 10억달러 어치를 유엔에 선뜻 기탁한 바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립자이자 세계 최고 부호인 빌 게이츠 회장은 자신의
사회사업재단을 통해 유니세프에 어린이 파상풍 예방 기금으로 2천6백만달러
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는 비즈니스와 무관한 순수한 자선 행위였다는 점에서
요즘 붐을 이루고 있는 기업들의 개도국 지원 프로그램과 구별된다.

특정 개도국에서 사업 기반을 다지기 위한 공격적 지역 후원 프로그램은
새로운 개념의 마케팅 전략으로서 많은 기업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기업들의 이런 마케팅 행사에 유엔이 적극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엔은 몇해전 코카콜라사가 개도국 기업인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만 해도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유엔의 개발 사업에 특정 기업을 연결시킬 경우 중립성을 훼손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최근 유엔은 태도를 1백80도 바꿨다.

돈많은 기업들이 개도국들을 돕겠다는데 동기를 따져가면서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보츠와나를, IBM은 가나를 맡으라는 식으로
거간꾼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는 한 기업들
의 개도국 지원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것은 해당 국가와 기업들 모두에
이익이 되는 윈 윈 게임임에 틀림없다"

유엔 관계자의 얘기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