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상품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4반세기, 또는 반세기에 걸쳐 사랑을 받아온 인기상품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연이 배어 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상품 이름만 들어도 "맞아, 그 상품 대단했지"라며
금세 맞장구친다.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지금 우리 곁에는 모진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 남은
장수상품들이 적지 않다.

두꺼비표 진로소주를 비롯 "열두시에 만나요"로 유명한 "해태 부라보콘",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경쟁업체의 집요한 공세를 이겨낸 "미원", 60년대
치아건강을 지켜준 "럭키치약", 소젖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촌부들의
비아냥거리가 됐던 "남양분유"...

이 상품들은 추억의 한켠을 지켜내는 우리의 소중한 자부심이기도 하다.


"비행기 텔레비전 컴퓨터 페니실린 원자력..."

프랑스 AFP통신이 최근 선정 발표한 20세기 최고 발명품들의 명세서다.

이들 발명품은 인류역사에 실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1903년 라이트형제가 탄생시킨 비행기는 지리적 제약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지구촌 사람들을 가까운 이웃으로 한데 묶었다.

돌이켜 보면 인류역사에 빛나는 발명품들 못지 않게 지난 세기동안 우리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변화와 충격을 안겨준 상품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라면을 비롯한 식료품에서부터 치약 등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상품들이 서민생활과 애환을 같이했다.

물론 그중에는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수명을 다하고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난
상품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몇몇 상품은 오늘날까지도 경쟁상품들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장수상품"으로 소비자들 곁에 뿌리내리고 있다.

먹거리중 가장 폭넓게 사랑을 받은 상품으로는 역시 라면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지난 63년 삼양식품이 개발한 "삼양라면".

당시 삼양식품그룹 전중윤 회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처음 구경한후 굶주린
국민들의 대용식으로 적당할 것이라는 판단아래 국내에 들여왔다.

하지만 처음 시장에 나온 라면은 가격과 맛 그리고 면발의 생김새 때문에
한동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곤욕을 치렀다.

간식용으로 어린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과자류 역시 먹거리문화에 큰
변화를 안겨준 상품이었다.

해방과 함께 탄생한 해태제과의 연양갱에서부터 크라운산도, 농심새우깡,
칠성사이다, 롯데껌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먹거리들은 지금도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리는 장수상품이다.

60년대만 해도 국민 1인당 한해 평균 50여개씩을 먹었다는 산도는 미군용
C레이션에 들어 있던 비스킷이 유일했던 과자시장에 돌풍을 몰고 왔다.

일본식 발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제품명을 샌드로 바꿨다가 추억과
그리움을 되살린다는 뜻에서 다시 산도로 환원한 일도 있었다.

지난 37년 처음 등장한 서울우유는 빵과 함께 우리 식단의 서구화를 앞장서
이끌어 왔다.

당시 1홉(1백80ml)짜리 병제품의 가격은 12~15전으로 싼 편이 아니었다.

서울우유 조합원이 사육하는 젖소가 5백여두에 불과해 원유자체가 부족한
탓이었다.

그러나 우유는 이제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됐다.

67년 출시된 남양분유는 국내최초의 조제분유로 아기들의 성장발육을
도와주었다는 점에서 엄마들에게는 가장 고마운 상품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71년부터 시작된 남양유업의 우량아선발대회는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유명
판촉행사로 성인소비자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다.

"평범한 아버지들"의 시름과 한숨을 달래주는데 한몫했던 "두꺼비표"
진로소주(24년)와 OB맥주(52년)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샐러리맨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

비누 치약 등 각종 생활용품의 등장도 우리 삶에 적지않은 변화를 가져온
사건으로 기록된다.

지난 66년 처음 나온 락희화학(현 LG생활건강)의 "하이타이"는 "세제=
하이타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킬 정도로 세탁문화에 일대 돌풍을 일으켰다.

같은해 나온 애경산업의 "트리오"는 주방세제의 효시.

기름때와 그을림을 빼기 위해 짚수세미에 고운 모래를 묻혀 그릇과 씨름했던
주부들에게 트리오의 탄생은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신기한 "발명품"으로 여겨졌던 트리오는 출시 3년만에 매출이 18배나 급증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54년에 첫선을 보인 "럭키치약"은 당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와 시장을
석권했던 "콜게이트치약"을 따돌리면서 국민들의 치아건강에 일조를 했다.

소화제의 효시상품으로 평가받는 "부채표 활명수(1910년)"는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돼 왔다.

1897년 궁중에서 일했던 민병호씨가 소화불량에 달여먹던 탕약에서 아이디어
를 얻어 개발한 활명수의 부채표 상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표로 기네스북에
도 올라 있다.

지금까지 90억병이 팔린 박카스(61년)도 피곤에 지친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 건강자양음료의 대표주자로 자리잡았다.

< 김수찬 기자 ksc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