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현 < 고려대 교수 / 산업개발연 소장 >

어떤 기업의 경영 혁신을 자문하면서 전구성원들의 의식관련 설문 조사를
해 보았다.

필자는 분석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 회사는 과연 보수적인가, 혁신적인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회사는 상당히 보수적이란 답변을 하였다.

"그러면 당신 자신은 보수적인가, 혁신적인가"라는 질문에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혁신적이라고 답변을 하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혁신적인데 남들은 대부분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즉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직도 남의 탓만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뉴 밀레니엄에 대비하여 모두들 혁신하자고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변화의
물결이 자기 부서에 들어 닥치면 "우리 부서는 괜찮아, 나만은 예외야,
문제는 저 윗분들에 있지, 아냐 당신 부서가 문제야"라고 하면서 남의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업에 가 보면 변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만 전혀 변하지 않고도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생존의 귀재"들로 가득찬 것을 볼 수 있다.

얼마전 인천 호프집에 큰 불이나 수십명의 인명피해를 보았다.

이를 목격한 어떤 방적회사의 사장이 전 직원을 모아 놓고 "방적회사에서
불 한 번 나면 끝장이다. 우리 정말 불조심 하자"라고 수 차례 강조하였다.

따라서 전 구성원들이 정말로 불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한달 후에 이 회사에 불이 나 이 회사는 망해버렸다.

즉 모두들 "불조심하자"라고 외치고 다녔으나 불조심을 위한 구체적 행동은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불조심을 위한 별동대를 만들어 한 시간에 한 번씩 공장 내외부를 점검한다
거나 소화기의 준비상태를 완벽히 재검한다는 등의 활동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21세기를 바라보면서 아직도 많은 구성원들이 입술로만 변화를 외치고
있거나 남의 탓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안정된 시기에는 대부분 조직들이 길이 잘 든 스위스 시계 같이
아무 탈 없이 잘 돌아갔었다.

따라서 자만심에 빠져 있다가 이따금 깨어나 급하게 이런 저런 변화만
추진해도 기업은 굴러 갔었다.

즉 "고장나지 않는 한 고치지 마라"라는 논리가 통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극적인 자기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전 구성원들이 우리가 왜 변화 해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건전한 위기 의식을 공유하지 않고는 개혁을 성공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구성원들이 혁신이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비록 현 상태에 불만을 잔뜩 갖고 있다해도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든 잭 웰치 회장이 최근
방한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개혁에 모든 사람을 참여시켜 자신들이 중요한 존재임을 믿게 해야한다.
혁신이 꼭 성공할 것이라는 신념을 전 구성원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상사
위주로 기업을 운영해서는 안된다. 필사적으로 관료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19년 동안 단 하루도 개혁의 고삐를 늦춘 적이 없다.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수천 번의 워크숍을 실시하여 전 구성원
이 건전한 위기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혁신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

웰치 회장의 끊임없는 혁신에의 열정에 탄복할 뿐이다.

이제는 개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혼돈의 시대에서 유일한 생존전략은 지속적인 혁신
뿐이다.

일본전기 (NEC)의 고바야시 회장은 "불안정해 보이는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가장 안전하며 안정되어 보이는 기업들이 사실상 가장 불안정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어떤 기업의 구성원들은 "경쟁이 심하다. 기술변화가 너무 빠르다. 수 많은
개혁프로그램들이 쉴세 없이 돌아가서 정신이 없다"라고 불평하면서 회사가
불안정해 보인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기업은 절대로 낭떠러지로 몰리지 않는다.

이런 기업들이야말로 혁신에 의한 학습을 통해 차별화된 역량을 지속적으로
축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혁신한다고 사람이나 짜르고 있지 않은가.

혹은 몇 차례의 워크숍만 하고 구성원들의 마인드가 변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는가.

혁신한다고 구성원들에게 공연히 불안감만 조성하여 이들로 하여금 자기
피난처에 더욱 깊이 숨어들게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제야 말로 이들을 혁신의 대열에 동참시킬 수 있는 지혜와 열정이 필요한
때이다.

< hyeon@tiger.kore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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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고려대 졸업
<>프랑스 리옹대 경영학 박사
<>저서:한국기업이 망할 수밖에 없는 17가지 이유, 사업구조 개혁전략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