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국제통화질서는 실질적으로 "1달러=1유로=1백엔"의 등가(parity)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왔던 1유로=1달러선이 붕괴됐다.

시장분위기로 봐서는 1달러=1백엔선도 붕괴될 여건이 충족돼 있다.

일본의 시장개입만이 이 선을 지켜주고 있다.

이에 따라 주중 내내 엔화 가치는 달러당 1백2엔대가 힘겹게 유지됐고
유로화 가치는 1달러선 붕괴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다.

국제금리는 미.일간의 금리차가 무려 4.5% 포인트까지 확대되면서 양분화
추세가 심화됐다.

이번주는 새해를 불과 3주밖에 안남긴 시점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국제금융시장에서는 그 해의 일정이 마무리된다.

특히 금년은 새 천년을 앞두고 있다.

그만큼 시장은 거래량이 줄어들면서 엷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대개 이런 시점에서는 시장참여자들이 "1월 효과(January Effect)"를 겨냥해
자산부채 포지션(cash flow)을 강세통화 표기자산으로 조정해 놓는 것이
관례이다.

95년 4월 역플라자 합의(anti plaza agreement) 이후 최근 4년간은 달러화
표시자산으로 포지션을 유지해 놓고 연말연시 휴가를 떠났다.

금년에는 뚜렷한 강세통화가 부각되지 않고 있다.

물론 최근의 움직임으로는 엔화가 모든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엔화로 포지션을 조정할 만큼 일본의 경제여건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행의 시장개입도 장애요인이다.

자연 시장참여자들의 심리는 불안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최근 들어 국제투기자금들의 활동이 재개되고 있다.

러시아 모라토리움 이후 위축됐던 투기자금이 금년 들어 금과 원유투기에
잇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활동력이 크게 회복되고 있다.

문제는 최근처럼 상품시장에 대한 투기요인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는 통화
투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단기적으로 각국의 경제여건상에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투기
자금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장개입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주에는 유럽이 시장개입에 나서느냐가 관심이 되고 있다.

최근처럼 유로화 가치하락과 유럽통화동맹(EMU) 실패와 연계시키는 분위기가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유럽은 오히려 유로화 가치하락을 방관해 경기부양
에 더 염두해 둘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일본의 개입의지를 감안해 볼 때 이번주 엔화 가치는 1백2엔을 중심
으로한 지난주의 움직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유로화 가치도 1달러 이하선으로 정착되는 국면은 예상되지 않는다.

물론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느냐는 점은 별개의 문제다.

국제금리는 미일간의 양분화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금융시장은 커다란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마하티르 수상이 재집권에 성공함으로써 경제외적인 면에서는
안정감이 한층 더해진 감이 없지 않다.

특히 이번주에 북한을 중심으로 한 화해무드가 무르익을 경우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긍정적인 영향도 기대해 볼 수 있다.

한편 지난주 시장개입으로 간신히 1천1백50원대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화
가치는 이번주에는 정부의 의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엔화 강세, 풍부한 외화사정을 감안하면 시장 내부적으로는 원화가 추가적
으로 상승될 여건은 충족돼 있다.

이럴 때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이미 지난주말에는 역외선물환 시장을 중심으로 투기조짐이 일고 있다.

과거처럼 정책당국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일 경우 국내금융시장은 갑자기
불안감이 증폭될 위험이 높다.

환율을 포함한 금융시장의 안정을 기할려면 이 방향으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시장에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고성장, 저물가, 저금리, 환율안정을 동시에 가져간다면 누가보더
라도 현 정책당국의 능력으로 봐서는 지나친 과욕이다.

정부의 과욕은 나중에 국민들의 고통이 수반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한상춘 전문위원 scha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