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구조조정 비용으로 책정한 64조원은 과연 얼마나 큰 돈인가.

일반 국민들은 얼른 감이 안잡힐 것이다.

막연하게 떠드는 64조원보다 내 주머니의 64만원이 훨씬 크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64조원이면 어림잡아 국민 1인당 1백50만원씩 나눠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국민 한사람이 1백50만원씩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4인 가구면 6백만원이다.

이 돈이면 미국이 자랑하는 척당 9조원짜리 최신 핵항공모함 7척을 사고도
1조원이 남는다.

남는 1조원으론 2백만명의 중학생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

말많고 탈많은 경부고속철도를 건설하는데 드는 돈도 12조원에 불과하다.

2000년대 동북아의 관문이라는 인천국제공항도 8조원이면 짓는다.

이렇게 큰 돈을 작년부터 올 연말까지 IMF(국제통화기금)체제 2년동안 다
쓰는 셈이다.

64조원의 이자만으로도 연간 6조원을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열심히 세금을 걷고 공기업 주식을 팔아도 공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성업공사와 예금보험공사가 발행한 채권의 이자를 부담하기도 벅차다.

뉴 밀레니엄(새천년)을 국가채무, 즉 나라빚을 화두로 삼아 시작하는
꼴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공적자금을 쓰고도 금융기관의 부실을 해소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공적자금이 불충분하게 투입되거나 비효율적으로 사용될 때 그렇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더 큰 비용이 들고 경제위기가 재연될 수도 있다.

공적자금을 쓸 때 쓰더라도 신중하고 엄격하고 철저히 아껴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오형규 기자 ohk@ked.co.kr >


<> 제일은행(7조9천8백억원)

인천-목포간 고속도로 건설 5조원
+ 공무원 임금 10% 인상 1조5000억원
+ 무궁화위성 5개 제작 1조2500억원
+ 30만 결식아동 점심해결 300억원

=제일은행에 들어간 공적자금은 대략 8조원.

이 돈은 정확히 인천국제공항을 짓는 비용과 맞아 떨어진다.

아니면 우선 5조원으로 인천~목포간 서해안고속도로를 놓을 수 있다.

박봉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의 임금을 10%정도 올려줘도 1조5천억원이면
뒤집어 쓴다.

남는 1조4천8백억원으로 무궁화위성(3호 제작비 2천5백억원)을 5개 정도
만들고 나머지로 30만명의 결식아동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


<> 서울은행(6조5천억원)

- 430만 중고생 2년간 무상교육 6조원
또는 대학교육비 12년치 6조3600억원
+ 그래도 남는돈 1400억~5000억원

=서울은행에 넣은 공적자금으론 대학 교육비(5천3백억원)를 약 12년간
부담할 수 있다.

아니면 4백30만 중.고교생들에게 연간 3조원씩 들여 2년간 무상교육을
실시해도 5천억원이 남는다.

서울은행 하나에 들어간 돈으로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제일.서울은행에 넣은 돈을 합치면 14조4천8백억원.

경부고속철도 건설비(12조원)보다 많다.

거대한 부실의 뒤끝은 이렇게 쓰디쓰다.


<> 한빛은행(5조5천5백억원)

- 벤처.중기예산 2년치 4조5800억원
+ 2000년 문화예산 9300억원
+ 영화 ''쉬리'' 16편 제작 4000억원

=한빛은행에 들어간 5조5천5백억원은 얼마나 큰 돈일까.

2000년 벤처.중소기업 지원예산 2조2천9백억원과 문화예산 9천3백억원을
모두 커버하고도 2조3천3백억원이나 남는다.

아예 2001년 지원예산까지 미리 뽑아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라는 벤처.
중소기업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남는 4백억원으로 대박을 터뜨린 "쉬리"같은 영화(제작비 25억원) 16편을
만들어 수출하면 어떨까.


<> 조흥은행(강원 충북은행 포함, 4조2천9백억원)

- 33개 상장 제약사 전부 매입 1조 5800억원
+ 비아그라 개발비 4000억원
+ 에이즈치료 개발비 1조6000억원
+ 국산신약1호 선플라 88가지 개발 7100억원

=4조2천9백억원이면 세계적인 신약개발국으로 올라설 수도 있다.

미국 화이자가 비아그라를 개발하는데 4천억원이 들었다.

에이즈치료제를 개발하는데는 1조6천억원이 쓰였다.

또 국내 33개 상장 제약회사(싯가총액 1조5천8백억원)를 다 사고도
7천1백억원이 남는다.

SK제약이 국내 신약1호로 개발한 선플라의 개발비는 81억원에 불과했으니
남는 돈으로 신약 88가지를 개발할 수 있다.


<> 서울보증보험(2조6천1백억원)

- 영월댐건설 5000억원
+ 무안.전주공항 4000억원
+ 신공항철도건설비 절반 1조7100억원

=2조6천1백억원이 있으면 지방의 주요 사회간접자본을 쉽게 확충할 수 있다.

영월댐(5천억원) 무안공항(3천억원) 전주공항(1천억원) 등을 건설하는데
9천억원이면 된다.

남는 1조7천1백억원은 61.5km인 서울역~인천국제공항간 신공항복선철도
(총공사비 3조2천4백억원)를 부천까지 깔 수 있는 돈이다.

그러고도 서울보증보험은 앞으로 2~3년 대우계열사에 보증서 준 회사채를
대신 갚아주기 위해 4조원 가량의 공적자금을 더 받아야 한다.


<> 대한생명(2조5백억원)

- 월드컵축구경기장 10개 건설 1조8100억원
+ 전국 관광지 화장실 개조 2400억원

=대주주의 부실경영으로 2조5백억원이 들어간 대한생명.

이 돈이면 2002년 월드컵 준비는 모두 끝난다.

전국 10개 도시에 각기 4만석 이상 월드컵 축구경기장을 짓는데 드는 돈을
모두 합쳐봐야 1조8천1백억원이기 때문이다.

공사비가 가장 많이 든다는 서울 상암구장이 2천6백41억원, 제주 서귀포구장
은 1천억원이면 충분하다.

그러고도 남는 2천4백억원으론 전국 관광지의 화장실을 개조하는 등
대회준비에 만전을 기하면 된다.


<> 5개 퇴출은행(동화 동남 대동 충청 경기은행, 11조8천4백억원)

- 미국 프로야구 뉴욕양키즈 매입 7200억원
LA다저스 매입 4200억원
+ 미국 프로농구 마이클조단 21년치 연봉 8400억원
+ 그래도 남는돈 200억원

= 20세기 최고의 팝그룹 비틀즈의 전곡 출판권을 사는데 8백20억원이면
된다.

또 올해 메이저리그 우승팀 뉴욕양키스(7천2백억원)를 사고 박찬호가 소속된
LA다저스(4천2백억원)도 살수 있다.

1백60억원이면 미국 메이저리그 홈런왕 마크 맥과이어를 1년간 데려다 쓸수
있다.

은퇴한 시카고 불스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도 연봉 4백억원짜리다.

선동열은 15년 선수생활동안 1백억원을 벌었다.

2조원이면 선동열 같은 선수가 2백명 정도 있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 5개 부실생보사(동아 조선 두원 태평양 한덕생명, 2조원)

- 미국 CNN방송 등 매입 9조6000억원
+ 일본아사히신문 10년차 광고비 1조9000억원
+ 그래도 남는돈 3400억원


=동화 동남 대동 충청 경기은행 등 5개 퇴출은행에 총 11조8천4백억원이
들어갔다.

문닫은 은행 하나당 2조3천억원 이상 꼴이다.

이 돈으로 9조6천억원 하는 미국 CNN방송을 통째로 사버릴까.

아니면 7조8천억원짜리 뉴욕타임스를 인수해 버릴까.

CNN방송을 인수하거나 뉴욕타임스를 사고도 남는 돈으로 일본 아사히신문에
10년동안 매일 전면광고를 내도 1조9천억원이면 뒤집어 쓴다.

< 오형규 기자 ohk@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