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 < 미국 네브래스카대 경영학 석좌교수 >

1950년대 중반까지 세계경제는 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스템이었다.

제품공급량보다 수요가 많으므로 공급자가 칼자루를 쥔 것이다.

기업들은 도.소매업자 브로커 등 중간자들과 최종소비자들을 자기 입맛에
따라 골랐다.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판매했다.

소비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비록 공급자가 지정하는 가격이지만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다행스럽게까지 여기는 분위기였다.

1960년대 이후로 전세계에 걸쳐 생산방식이 혁신됐다.

기술도 진보됐다.

생산량은 급증했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마케팅의 시대라고 불린다.

가격 전략, 광고, 상표 창조, 판촉, 공급망 관리 등에 걸쳐 창의적인 마케팅
기법이 경영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판매를 최대한으로 늘리느냐가 관건이었다.

가격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거나 효과적인 광고수단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 등이 중요한 경쟁수단이었다.

1989년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붕괴된 후 국경 없는 글로벌 경제체제가 현실화
됐다.

그러자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과 비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총체적인 기업전략이 강조되는 소위 "경영 중심의 체제"가 형성
되었다.

이와 더불어 특히 정보.통신 분야의 폭발적인 기술발달 때문에 지식 중심의
시대가 찾아오게 됐다.

기업들은 지식이 지속적인 경쟁우위의 원천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전 조직적으로 어떻게 하면 유용한 지식을 재빨리 얻고, 공유하고, 사용할까
하는 전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인터넷 혁명은 제품과 서비스를 전형적인 공급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전자상거래 시대를 거쳐 이제 전자사업
(e-비즈니스) 시대를 열어놓았다.

많은 연구가 2010년까지 전 세계인구의 3분의1 가량인 20억이상의 인구가
인터넷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적어도 2010년까지는 인터넷기술을 이용해 각종 소비행위를 하는 e-고객의
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들은 PC 하나로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의 선택뿐만 아니라
특정기업과 거래기업 종업원의 성향, 심지어는 고객의 취향까지 직접 파악하
기를 원한다.

실제 이런 현상은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고 활용할 수 있으므로 특정기업체 상표이름
광고내용 등을 오래 기억하지도 않고 이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누가 제공하든 탁월한 서비스와 제품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를 제공하는 종업원들과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동일 소비자를 더
신뢰한다.

e-고객시대에는 기업체가 고객의 비전에 따라 창조되고, 조직화되고, 관리
되고, 운영되는, 이른바 고객이 주도하는 경제체제를 낳는다.

이 시대에는 기업이 주도권을 갖고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다.

고객의 취향에 따라 생산될 제품이 선택적으로 규정되고 소비되는 방식이다.

이미 여러 제품이 소비자에 의해 디자인되고, 생산되고, 가격이 정해지고,
유통되고 있다.

어린 소녀가 바비인형을 디자인하고, 소년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경주용차의
유형과 모양을 정하고, 육상선수들은 자기들의 필요에 맞게 나이키 신발을
디자인한다.

과거 기업의 비전, 경영전략, 그리고 조직의 구조 등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e-고객의 비전, 욕구, 그리고 상상력이 대체하고 있다.

이미 몇몇 기업들은 이 추세를 인지하고 e-고객을 사로잡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지난 3월 제품 중심의 조직구조에서 고객유형 중심의
구조로 바꾸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정보기술관리자 부문, 지식근로자 부문,
소프트웨어디자이너 부문, 그리고 일반고객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델.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하루에 4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미국의 최대 컴퓨터 판매회사인 델 컴퓨터는 다섯가지 주요 고객유형(가정용
소기업 대기업 교육기관 정부기관 등)을 중심으로 조직이 짜여 있다.

e-고객의 시대는 마침내 찾아왔다.

이는 조직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제품의 질, 서비스, 정보의 제공, 그리고 예기치 않은 기쁨을 통해 고객에게
예외적인 가치를 창조해주는 조직만이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렇다면 시장이나 제품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갖고 있는 까다로운 e-고객
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주는 데 전력하는 창의적인 지식근로자를 선발하고
보상하고 유지하는 데서 절대적인 경쟁우위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명백하다.

새 천년의 e-고객시대를 향해 한국기업이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 srhee@unlserve.unl.edu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