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다 아는 이솝 우화가 있다.

황금달걀을 한꺼번에 얻으려고 거위의 배를 가른 얘기다.

거위는 죽어버렸다.

황금알은 영영 구경도 못하게 됐다.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주인이 새벽마다 깨우자 닭을 없애버린 일꾼들의
얘기도 있다.

며칠간은 늦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모르게 된 주인은 그 뒤부터는 한밤중에 일꾼들을 깨워
볶아 댔다.

중국의 고사에도 비슷한 우스개 거리가 많다.

보리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줄기를 뽑아 올린 사람(알묘조장)이 있다.

시간을 아끼려고 시계바늘을 세운 관리가 있는가 하면 미꾸라지를 잡으려고
연못 물을 몽땅 퍼내 버린 농부도 있다.

실제로는 없을 상황을 풍자한 우화들이다.

후세엔 그러지 말라고 일러주는 선인들의 충고이기도 하다.

한데 이런 얘기들이 오늘날 이 나라에선 책에나 나오는 고사성어가 아니다.

화재로 참사를 빚은 인천의 술집에서 경찰관들이 줄줄이 돈을 먹은 것으로
확인되자 경찰청이 대책을 내놓았다.

전국의 지방경찰청장이 모두 모여 만든 이른바 "유착근절책"이다.

유흥가 단속업무를 6개월~1년이상 맡은 경찰관은 모조리 바꾸어 버린다는
게 바로 그 대책이다.

파출소 근무자는 두달에 한번씩 담당지역을 바꾸게 했다.

치안과 질서를 책임지는 경찰관이 근무지의 뒷골목을 겨우 알만하면 다른
동네로 보낸다는 것이다.

남미의 어느나라가 교통경찰을 모두 여자로 바꾸었다더니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쯤되면 "대책"없는 나라다.

아무리 정책수단이 없기로 전국의 유흥업소 담당 경찰관을 통째로 바꾼다는
말인가.

단속방법을 바꿀 여지는 없었던가 보다.

아무리 제도를 개선해도 경찰관의 부패는 막을 도리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는 것인가.

이런 "이솝의 거위잡기식 대책"은 이번 뿐이 아니다.

10여년 전의 일이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한 젊은 경관이 총기를 갖고 나가 소동을 벌였다.

영문도 모르는 주민 몇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자 내놓은 대책이 걸작이다.

"애인이 있는 미혼 경찰관에게는 총기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청만의 얘기도 아니다.

부처를 가리지 않고 툭하면 내놓는 "습관"이다.

몇년 전에 식당에서 이쑤시개를 주지 못하게 한 적이 있었다.

손님들이 쓰고 버리는 이쑤시개가 음식물 찌꺼기에 섞여나가 이를 먹는
돼지를 죽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돼지 덕분에 한동안 칫솔질을 착실하게 한 기억이 있다.

결혼식장에서 음식물 접대를 금지하기도 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 였다.

이통에 때를 맞추지 못하면 시골에서 대절버스를 타고 오는 친척들까지도
꼼짝없이 배를 곯아야 했다.

멸달 못가 백지화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올 봄엔 "스승의 날" 학교 문을 닫게 했다.

고달픈 우리의 선생님들을 하루쯤 쉬게하려는 배려가 아니다.

스승의 날에 "촌지"를 들고가 잡음이 나니까 아예 "휴교령"을 내려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선생님들은 잔칫날 촌지나 챙기는 한낫 모리배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제정책도 매한가지다.

특정부문을 겨냥해 날카롭게 공략하는 정교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외환위기 때의 일이다.

달러가 급해지자 정부는 어린이들의 유학을 봉쇄해 버렸다.

돈을 아껴야 할 상황인 만큼 애들 공부도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불법유학만 늘려놓고 말았다.

얼마 전엔 특정회사의 사정이 악화돼 채권환매 수요가 일어나자 아예 환매를
막아 버렸다.

한꺼번에 환매가 몰릴 경우 불가피하게 대란이 일어나도록 만든 꼴이 됐다.

나중에 시장에 돈을 퍼붓고서야 후유증을 막을 수 있었다.

빈대 잡는다며 초가삼간을 통채로 태워버리는 "싹쓸이 정책"이 빈발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우선은 백성을 우습게 알기 때문이다.

밀어부치면 된다는 군사독재 시대의 관치체질을 버리지 못했다는 실증이다.

백성은 다스리는 대상이라는 "우민" 사고가 몸에 배인 까닭이다.

"국민의 정부"라니 언감생심이다.

여기에다 관료집단의 무능도 한몫 거든다.

아이디어가 없으니 펑펑 쓰고도 남는 "힘"을 휘두를 수 밖에 없다.

잘 들지도 않는 헌칼이 위력을 발할 까닭이 없다.

시장은 이렇게 "용감한" 정책을 칭찬하지 않는다.

겨냥하는 과녁이 분명하고 동원하는 수단이 정밀해야 한다.

힘자랑은 체육대회나 전쟁놀이에 가서나 할 일이다.

몇년전에 만난 한 외국인에게서 호되게 무안을 당한 기억이 있다.

그는 "만일 개들이 골목 전봇대에 오줌을 싸서 악취가 나고 보기도 싫다면
한국에선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기다리지도 않고 스스로 답을 말했다.

"아마 전봇대를 모두 뽑아 버리게 할 것"이라고...

얼굴이 화끈거리기는 이번이 더하다.

경찰관을 모조리 바꾸었는 데도 또다시 비리사건이 터지면 그때는 정부가
이런 발표를 하지 않을까 싶다.

"경찰관의 부패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정부는 용단을 내렸다. 경찰관을 아예
없애기로..."

< manh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