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뮐러스 < 독일 아데나우어재단 동남아시아담당책임자 >

97년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에 빠져든 아시아 국가들이 앞으로 어떤 방식의
발전전략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는 글로벌화에 적절히 대처하면서 성장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으로 집약된다.

글로벌화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해 경제블록을 형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관련, 유럽연합(EU)이 아시아지역의 좋은 발전 모델이 될 수 있다.

EU는 경제블록화를 통해 강한 집단을 형성하자는 발상에서 탄생했다.

세계화 물결이 거세지기 전에 유럽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해 글로벌시장에
서 경쟁력을 갖추자는 취지였다.

현재 아시아 국가들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등 2개의 국제기구를 통해 역내 무역과 경제발전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APEC을 중심으로 블록화를 추진중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이미 동남아 단일통화와 단일 환율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등 지역통합에 한발 앞서가고 있다.

현재 동아시아를 단일경제권으로 묶는 학술적인 연구가 한창 진행중이다.

올초 베트남 페낭에서 "동아시아 공통통화"를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렸다.

13개국의 비정부기구(NGO)와 연구기관 대표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참석자
들은 하나같이 동아시아 지역의 통화통합 가능성에 긍정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경제발전 정도의 차이, 이질적인 정치제도, 정치불신 등 산적한 과제에도
불구하고 통화통합이 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는 아시아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준다.

단일통화인 유로화 구상은 60년대 피에르 워너의 통화통합에 관한 보고서로
시작됐다.

그후 수많은 시행착오와 준비를 거친후 99년1월에 단일통화인 유로화가
마침내 공식 출범했다.

이는 단일통화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시사한다.

아시아 국가들은 지난 20년동안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경이적인 성장을
일궈냈다.

그러나 40년후에 아시아 지역이 단일통화로 결속돼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는 어렵다.

동아시아지역에서 단일통화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 점진적으로 통화통합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발전단계나 지역특성을 감안해 아세안권, 중화권, 일본.한국권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권역내에서 조화를 이룬 뒤 차츰 동아시아 전역을 단일통화권으로
묶어 나가면 된다.

지역간 무역자유화, 역내의 해외직접투자에 대한 우대조치, 금융통합 가속화
등이 병행돼야 한다.

물론 통화통합을 위한 논의는 아세안과 APEC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단일통화의 궁극적인 이점은 환율의 불안정성 제거, 역내 기업의
규모경제 촉진, 국제투기세력의 통화공격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등을 들 수
있다.

경제규모가 작은 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대개 국제투기세력의 통화공격
을 막아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따라서 역내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고 운용에 대한 공조체제를 형성, 서로의
외환보유고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통화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세안국가들은 지난 98년 하노이 행동강령에서 통화위기 방지를 위한 조기
경보체제의 수단으로 감시메커니즘을 도입했다.

이 메커니즘을 통해 각국 통화당국은 자료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이것을 점차 동아시아지역으로 확대해 나가면 될 것이다.

또 단일통화가 정식으로 출범하기 전의 준비단계로 "동아시아통화지수"
(EACI:East Asian Currency Index)라는 단일통화단위를 도입, 역내 교역등에
활용하는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통화통합이 아시아지역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치료하는 만병
통치약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과도한 단기외채, 투명성 결여, 비효율적 산업구조등 경제위기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장기비전과 강력한 정치력, 상호이익주의 등은 단일통화 실현을
위한 필수 요소들이다.

이와함께 국내 개혁과 무역및 투자 자유화도 반드시 우선돼야 할 과제다.

위기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유럽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것은 번영되고 단일화된 대륙건설이라는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지역도 더 큰 것을 달성하기 위해 일어설 수 있다.

동아시아 단일통화가 아직은 비현실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내의 식견 넓은 지도자들과 지식인들 덕분에 통화통합 작업이
벌써 정치적 논의대상이 되고 있어 장래가 어둡지는 않다.

< 정리=박영태 기자 pyt@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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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독일 최고 연구기관인 콘라드 아데나우어재단의 볼프강 뮐러스
동남아시아담당책임자가 아시아위크(10월29일자)에 보낸 기고문을 정리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