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주 한아시스템 사장.

단아한 용모와 꾸밈없는 성품을 지녔으나 그의 42년 인생은 굴곡으로 점철돼
있다.

나태와 고난을 깨달음과 인내로 극복한 오뚝이 인생이다.

한국의 척박한 기술토양에서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을 쌓아 고유 기술을
만들어냈다.

또 세계적인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음으로써 선진 경영기법과 남다른
기술 노하우를 쌓았다.

평범함을 거부하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낸 신동주 사장이 "가장 한국적인
벤처기업인"으로 손꼽힌 이유다.

신 사장은 여러 측면에서 "가장 성공한 재미 한국인 벤처기업인"으로 평가
받고 있는 김종훈 루슨트테크놀로지 사장과 비견되는 인물이다.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거쳐 주경야독식 학업을 계속해 맨손으로 창업,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최첨단 네트워크장비 회사를 일궈
냈다는 점들에서 그렇다.

신 사장은 이제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실패의 쓴 맛을 훨씬
많이 본 사람이다.

그는 "떨어져 본" 경험이 많다.

고입 대입시험에서 잇따라 낙방했다.

충북 음성의 과수원집 아들이었던 그는 중.고교 시절 공부보다는 말썽
피우는 것을 즐긴 편이었다.

높은 나무 위에서 놀다 떨어져 허리를 다치기도 했다.

"재수"를 거쳐 연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후에는 산악반에 들어가 등반에
빠졌다.

암벽타기를 즐겼고 결국 암벽에서 떨어지는 사고도 당했다.

대학 4학년 2학기에 접어들어서야 그는 정신을 차렸다.

허송세월을 보낸 것 같은 강한 자책감에 사로잡혀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
했다.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이 그의 뇌리를 때렸던 것.

졸업과 함께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 입학,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공부를
계속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그에게 오늘날의 성공을
가져 오게한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줬다.

삼우통신의 통신장비 개발프로젝트에 소프트웨어개발 담당으로 참여했던
것.

그는 여기서 남다른 실력을 보였고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일거리를 주기
시작했다.

금성사(현 LG전자)에서 입사를 제의해 왔다.

병역특례 혜택을 받기 위해 이곳에 입사해 그래픽터미널과 프린터,
유닉스컴퓨터의 국산화작업에 참여했다.

그의 실력은 빛을 냈다.

2~3일 걸릴 일을 반나절에 처리했다.

6개월짜리 프로젝트를 1개월만에 완성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주위에선 그를 "이사급 연구원"으로 부르기도 했다.

일과시간 외에는 선배나 아는 사람들이 부탁하는 프로젝트를 맡아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같은 과외 일들이 나중에 신 사장의 창업을 재촉하는 동기가 된다.

이렇게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창업때 큰 힘이 돼준 것.

네트워크 사업의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신 사장을 보고 10여명의 엔젤들이
투자해줬던 것이다.

90년 그는 김광태 퓨쳐시스템 사장으로부터 그럴듯한 제안을 받는다.

"우리 손으로 데이터통신기술을 개발해 세계시장에 도전해 보자"는 제의
였다.

그는 기술이사로 참여했다.

당시 퓨쳐시스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은 10명.

대부분 KAIST(한국과학기술원)와 금성사 출신으로 모두 기술에 관한한
스스로 최고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인력으로 뭐든 못만들겠나"는 생각은 1년만에 깨지고 말았다.

대기업 조직에서 몸담았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간의 성향이 달라
결국 조직을 분리하게 된 것.

퓨쳐의 경험은 "경영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한아시스템은 이런 과정을 거쳐 91년 설립됐다.

선진국 기업들의 전유물인 네트워크장비를 국산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주위에선 "시스코 스리콤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버티고 있으니 포기하라"
고 말렸다.

"많은 실패를 해봤고 그것을 다시 성공으로 바꿔도 봤지요. 두려운게
없었습니다"

무모한 도전을 밀어붙인 용기의 원천이었다.

신 사장은 자금난 속에서도 앞을 내다보고 라우터 허브 랜카드 터미널서버
등 네트워크 장비 개발에 전념했다.

95년 터미널 프린터서버, 98년에는 네트워크 매니지먼트 시스템(NMS)으로
각각 신기술(KT) 인증을 획득했다.

최근 한아시스템은 소형 라우터 부문에서 세계 최강자리를 넘보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이 회사 제품의 점유율은 50%에 육박하고 있다.

여러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는 라우터 부문에서 최강자는 시스코.

시스코는 포천지에 의해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로 선정된 회사다.

그런 시스코를 일부 품목에서나마 위협하고 있어 그로서는 가슴벅차기만
하다.

한아시스템은 이제 IMF의 터널을 빠져 나와 탄탄대로에 서 있다.

신 사장이 당초 꿈꾸었던 "한국적 벤처기업 성공모델"을 상당부분 이뤄냈다.

현재 이 회사의 종업원 82명중 연구원은 40여명이나 된다.

올해 예상매출은 지난해(1백6억원)의 2배 이상인 2백30억원.

영업직원 8명으로 이같은 매출을 올린다.

2000년 목표는 4백50억원.

매출의 25% 가량을 연구개발에 쏟고 있다.

또 한국종합기술금융(KTB) 기은캐피탈 한국IT벤처투자 산업은행 한국투신
등 국내 굴지의 투자기관들이 지분을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만의 최대 투자은행인 CDIB가 3백만달러를 투자했다.

한아시스템의 미래를 본 것이다.

신 사장은 경영상황을 사원들에게 모두 공개하는 투명경영을 펼친다.

상당수 직원들에게는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부여했다.

연내 코스닥에 등록해 그동안 고생한 직원들에게 보상해 준다는 것이 신
사장의 생각이다.

< 문병환 기자 m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