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기업들이 그동안 애호하던 말은 "클라이언트"(고객)였다.

클라이언트란 단어를 시도 때도 없이 사용했다.

"클라이언트"가 차지하던 이 자리를 최근들어 "파트너"(동료)란 말이 대신
하고 있다.

초일류기업들은 경쟁업체마저 주저없이 파트너라고 칭한다.

이같은 변화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 제조업체와 광고대행사의 관계 변화에서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광고대행사에 대한 대행료 지급방식을 전통적인 "커미션
방식"에서 "성과급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커미션 방식이란 전체 광고예산이 잡히면 그 일정 비율을 대행료로 지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제품의 광고비가 1백억원이면 10%를 대행료로 지불하는 식이다

성과급 방식에서는 그러나 "과실"을 나누게 된다.

광고가 잘돼 제품판매가 늘면 대행료도 많아진다.

물론 반대 경우도 가능하다.

대행료 지불방식의 변화는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수백년동안
요지부동이었던 원칙의 대변화다.

미국의 프록터&갬블(P&G)사는 세계 광고업계의 최대 고객이다.

생산 제품이 다양한 만큼 많은 광고를 한다.

이 회사가 최근 광고 대행료와 관련해 중대 결정을 내렸다.

내년 7월부터 대행료를 제품의 판매 성과와 연계해서 지불한다는 얘기였다.

P&G는 우선 과거 제품광고에 지불했던 대행료의 평균치를 구해 베이스(Base)
로 삼는다.

이를 기초로 제품 판매 증감에 따라 대행료를 조정한다.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급격한 판매 하락에 대비, 최저 대행료란 제도적
보완책을 만든다.

"최대 물주"의 이 결정에 세계 광고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광고대행업이 처음 탄생했을 때 대행사는 단순 브로커(중개업자)였다.

신문같은 광고매체의 공간을 사고파는 일의 중개자일 뿐이었다.

1864년 월터 톰슨은 여기서 한 단계 발전시켰다.

톰슨은 대행사를 활용해 좀더 효과적이고 독창적인 광고를 만들라고 광고주
를 설득했다.

크리에이티브(Creative)대행사는 이때부터 출발했다.

대행사 성격이 단순 브로커에서 크리에이티브 대행사로 변했지만 대행료
지불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커미션 방식이 그대로였다.

미국 업계에서는 지금도 전체 광고예산의 약 15%가 커미션이란 관례가 있다.

물론 대행료 지불방식을 바꾼 업체가 없진 않았다.

하나 둘씩 늘어왔다.

그러나 이번에 P&G가 대행료 지불방식을 완전히 바꿨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세계 최대 광고주의 결정이기에 성과급 방식이 새로운 원칙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P&G의 결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회사는 오는 2005년까지 총매출액을 10년전보다 2배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이 외환위기를 겪었다.

주요 선진국은 불황이다.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것이다.

회사는 결국 "지푸라기라도 끌어안는 심정"으로 광고 대행사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있다.

커미션 방식에 대해서는 많은 폐단이 지적돼왔다.

일단 광고주가 광고계약을 맺으면 대행사의 수입은 보장된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광고를 제작, 수행하느냐와는 무관하다.

때문에 극단적인 경우 엉망으로 광고를 만들어도 히트광고를 만든 대행사
보다 많은 대행료를 받을 수있다.

한편 대행사들은 비싼 TV광고에 매달린다.

TV광고 한건에 20만달러의 대행료가 들어온다면 인쇄광고는 여러개를 해도
2천달러를 벌기가 쉽지 않다.

커미션방식이 오래도록 유지됐던 또 하나의 이유는 성과급식에 문제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고의 효율성은 측정하기가 곤란하다.

다양한 요인들이 제품 판매액에 영향을 준다.

가격이나 제품의 질, 시장의 경쟁상황이 종합적으로 작용한다.

광고를 잘해도 매출은 감소할 수 있다.

미디어분석가인 미국의 로나 틸비안은 대행료를 성과급식으로 전환할 경우
"대행사는 어느 회사의 광고를 대행하느냐를 중시하게 될 것이며 제조업체와
광고대행사간 파트너십은 훨씬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P&G의 결정은 한마디로 "제로 섬"(Zero-sum)에서 "플러스 섬"(Plus-sum)으로
의 전환이다.

나의 이익이 경쟁자의 손해가 되는 경영이 나와 상대방이 동시에 이익을
보는 경영으로 바뀌는 신조류를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다.

< 박재림 기자 tr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