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말부터 위기를 맞은 우리 경제가 다시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중
하나가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제유가가 다시 2년전 수준인 배럴당 20달러 선을
넘어서고 있어 아직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세계 경기회복에 따라 석유수요가 다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강력한 감산 합의가 가장 근본적
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감산합의에 따른 OPEC 산유국들의 이득은 실로 막대하다.

지난 3월 OPEC이 합의한 감산량은 하루 2백10만배럴로 OPEC 전체 1일 원유
생산량의 10%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현재 국제원유 가격은 지난 2월말에 비해
두 배나 상승했다.

수출량 감소를 감안하더라도 석유 수출에 따른 외화 수입이 80%는 증가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OPEC은 과거에도 강력한 담합을 바탕으로 국제유가를 크게 올린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번번이 감산 합의가 깨어지면서 다시 국제유가가 하락
하곤 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게임이론이다.

게임이론은 비교적 최근에 경제학에 도입된 것으로서 상대방의 경제행위가
자신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과거 OPEC 감산합의의 실패를 게임이론을 통해 해석해 보자.

이러한 상황은 "죄수의 딜레마"로 표현할 수 있다.

분석의 단순화를 위해 두 명의 죄수가 있다고 하자.

두 명의 죄수는 각각 분리되어 조사를 받는데 모두 범행을 부인할 경우
결국 완전한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워 경미한 처벌을 받게 되지만 둘 다
자백할 경우 혐의가 모두 드러남으로써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하자.

그러나 이때 조사를 담당하는 검사가 한 사람만 자백할 경우 자백한 사람은
방면해 줄 것이나 끝까지 범행을 부인한 사람은 가중 처벌되어 더욱 무거운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죄수들에게 알려 주었다고 하자.

각 죄수들이 택할 수 있는 최적의 행동은 무엇일까.

죄수 1은 죄수 2가 자백하는 경우와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 등 두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것이다.

우선 죄수 2가 자백을 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죄수 1도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괜히 혼자 범행을 부인하다가 더욱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죄수 2가 범행을 부인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죄수 1은 공범을
배신하고 범행을 자백하여 방면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따라서 죄수 1은 죄수 2의 행동 여부에 관계없이 자백을 하는 것이 최적의
행동이 될 것이다.

이 상황은 죄수 2에게도 마찬가지다.

조사를 받기 전에는 둘다 자백을 하지 말자고 굳게 약속을 했을 것이지만
결국 둘다 자백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OPEC의 감산합의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회원국들이 감산 이행을 하든 안 하든 자신은 감산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들이 감산을 이행할 때 혼자 이행하지 않으면 과거의
물량을 오른 가격으로 팔 수 있어 많은 이득을 볼 것이며, 다른 나라들이
감산을 이행하지 않을 때 혼자 감산하고 있으면 자신의 수출 물량만 줄어
들어 막대한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이론은 감산 합의를 해야할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경우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즉 한번 합의를 파기함으로써 잠시 동안의 이득을 얻으나 상대로부터
신뢰를 잃어 미래의 이득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합의를 계속 준수함으로써
장래에도 꾸준히 이득을 얻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게임이론에서 증명되어
있다.

이것은 합의 파기에 따른 유가하락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론에서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라 원유 수요국들과의 관계,
OPEC 회원국의 내부 사정 등 다양한 변수가 있으므로 감산 합의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의 경우 과거와 달리 합의 준수가 잘 되고 있는 상황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전민규 < 현대경제연 주임연구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