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나 전염병, 전쟁을 빼고 나면 1백년전만 해도 가장 큰 사고는
마차에 치여 죽거나 나무에서 떨어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기술과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사회에서는 사고의 규모도
비약적으로 커졌다.

드리마일 아일랜드나 체르노빌의 원자력사고, 그리고 보팔의 폭발사고뿐
아니라, 날로 심각해지는 대기 및 수질오염, 그리고 해수면 기온상승에 따른
기후변화 등은 현대문명 자체가 새로운 위험의 원천이 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첨단의 기술로 만든 챌린저호의 폭발사고에서 보듯이 현대성이 가져온
사고의 원천은 고도 복합성의 결정체인 과학기술에 내재해 있다.

그래서 페로(C Perrow)는 현대문명이 낳은 정상사고(normal accident)에
대해 주목했다.

즉 검증되지 않은 첨단의 복합기술을 이용할 경우 비록 통계적 확률은
0.1%미만이라 하더라도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하며, 그러한 참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짧은 시간에 현대성을 구현한 한국사회는 정상사고보다는 일상화한 어처구니
없는 사고에 시달리고 있다.

페로가 예측한 정상사고와 달리 우리의 대형사고는 이미 검증된 기술을
활용하지만 "원칙과 기준"을 무시하는데서 주로 발생했다.

가장 큰 원인은 사회의 전문화와 분화는 급속도로 일어난 반면, 분화된
사회조직들간의 유기적 통합을 지탱해주는 도덕적 기반, 즉 제도에 대한
신뢰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규칙을 생산 집행하고, 위반자를 처벌하는 입법.사법.행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신뢰할 수 없는 규칙하에서 사람들은 온갖 연고와 뇌물을 동원해 법률과
타협해 이득을 챙기려 하고, 이는 다시 규칙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또한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는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해 미래에
부과될 비용보다는 현재의 비용절감에 몰두했다.

그러나 미뤄두었던 지급청구서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결과는 건물의 붕괴로
그리고 경제위기로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교훈을 얻고 있지 못하다.

조직이론가들은 사회체계를 관리하는 원칙과 기준이 특성에 따라 달라져야
함을 지적한다.

즉 꽉 짜인 결합(tight coupling)을 이루어야 할 체계와 느슨한 결합(loose
coupling)을 이루어야 할 체계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자동차의 부품들은 서로 맞물려 빈틈없이 조립돼 있어야 하지만
범퍼나 타이어, 그리고 쇼크 업소버 등과 같이 충격을 완화할 부품마저
고정돼 있으면 사고를 낼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꽉 짜여져야 할 체계에서는 철저한 원칙준수가 필수적이다.

정해진 규범대로 예외를 인정치 말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철저한 건축감리가 부실공사를 막고, 외부의 침략에 대비하는 조기경보체제
가 국가안보를 뒷받침하며, 일관성있는 세무행정이 탈세를 줄이고 국민의
조세형평성을 제고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조직에서 고지식한 것으로
"왕따" 당하는 상황에서는, 흥정과 타협이 한국사회라는 자동차의 나사를
풀어버려 대형사고의 위험에 노출시켜 버린다.

최근에 서울대공대 실험실에서 발생한 사고도 아직 원인규명은 돼 있지
않지만, 안전관리규범을 지키지 않았던 것도 그 중요한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위험은 공학적 결함 그 자체보다는 사회적 규범체제의
와해로부터 기인하는 부분이 더 크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는 그 반대의 위험도 만만치 않다.

즉 느슨해야 마땅할 곳에 융통성 없이 빡빡하게 규칙을 적용할 때 생기는
위험이다.

과학자들의 연구내용보다는 연구비의 집행절차만을 따지며, 정작 연구와
교육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이나 교사들로 하여금 행정적 일처리나 잡무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만드는 교육부의 획일적인 대학정책은 대표적인 사례다.

융통성 없는 획일성이 창의성을 말살하고 의례주의를 설치게 한다.

이러한 불일치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일상화되고 구조화된 위험은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철저해야 할 원칙에 대해 타협하고, 자율에 맡겨야 할 부분에 간섭하는
한국적인 조직관리의 후진성이 사라질 때 우리는 한국적 위험사회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사회발전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 jyyee@plaza.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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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사회학과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박사
<>저서:경제의 사회학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