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충기 < 유럽개발은행 수석전문위원 >

국제금융업에 종사하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한국정부에 묻고 싶다.

"대우 문제"에 대해 준비된 대안을 갖고 있는가.

국가적 손실을 신중하게 따져 보았는가.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대우문제를 쉽게 매듭지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국제금융기구로서 유럽개발은행은 지난 90년대초부터 대우를 포함한 한국
기업들이 동구권 및 옛 소련 지역에 투자할 때 지원해준 바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대우그룹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대우그룹에 대한 인식은 과장된 점이 많다.

대우그룹은 생각만큼 그렇게 부실하지도,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무분별하게
투자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른 국내 대기업들보다도 대우는 해외 진출에 한발 앞서나갔고
성공적이었다.

문제가 심각한 일부 부실계열사들만 정리하고 경영체제만 개선시킨다면
대우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IMF 쇼크 이전까지만 해도 대우그룹을 대표하는 (주)대우의 신용등급은
S&P 등 3대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투자적격기업으로 평가되어 왔으며 대우
그룹의 유동성은 다른 국내 대기업들에 비해서 좋은 편이었다.

폴란드에서 대우자동차 시장점유율은 이탈리아의 피아트를 제치고 1위로
부상했으며 대우은행은 헝가리에서 가장 좋은 은행이 되었다.

루마니아의 대우 자동차나 조선 프로젝트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유럽개발은행과 대우증권이 우즈베키스탄에 설립한 은행 역시
건실하게 성장하고 있다.

대형 투자의 손익분기점은 설립 뒤 최소한 3~5년 후에나 나타나는 것이며
해당지역들의 경기회복을 감안한다면 대우의 다른 해외투자 역시 대부분
사업성이 충분히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서양의 교과서식으로 경영한다면 대우방식의 해외투자는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와 같은 한국의 주요 산업들 모두가 이와
같이 높은 위험을 안고 시작했다.

앞으로 상당 기간동안은 이러한 방식이 아니고서는 선진국과 경쟁할 길이
없다.

물론 IMF 쇼크 이후 대우그룹 역시 다른 대기업들처럼 정부가 제시한
구조조정에 신속하게 대처했어야 했다.

특히 GM사와의 자동차협상을 핑계로 시간만 끌지 말고 잘되는 몇몇 계열사
들이라도 팔아서 서둘러 부채비율을 줄여야 했다.

그러나 대우가 이렇게 된 데 대한 현정부의 책임도 크다.

대우문제가 그렇게 심각했다면 어떻게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게 했으며,
삼성자동차를 대우로 흡수시키려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빅딜로 인하여 대우는 엄청난 손해를 보았으며 구조조정에도 차질을
본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정부는 대우그룹의 유동성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으며 해결과정
에서 외국채권단들의 반발로 다른 국내기업들에까지 큰 피해를 주었다.

특히 정부는 대우문제를 국내 채권단들에만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

자신들도 부실하여 공적자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국내 채권단들은 대우문제를
해결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은행들의 기본 생리로 보아 대우의 장래나 국가 전체의 이익은 뒷전으로
하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챙길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워크아웃 기업들을 정상화하는 방법으로 국제은행들은 대부분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기법을 기본으로 한다.

책임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상환기간 연장과 함께 가능한 출자전환을
통하여 부채를 탕감시키고 정상화된 후에는 언제든 채권은행들이 보유한
주식을 되찾을 수 있는 권리(Call Option)를 해당 기업들에 주는 방식이다.

이때 주식가격은 이자율보다 대부분 높으므로 은행들의 입장에서도 이익이
된다.

이러한 국제은행들의 관행을 고려한다면 정부는 대우그룹의 워크아웃 과정
에서 회생이 가능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채권단들의 상환기간 연장과 동시에
출자전환을 유도하되 2~4년 내에 해당 기업들이 정상화된다면 대우그룹이
채권단들의 주식을 적절한 가격으로 인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러한 방법이 대우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매듭짓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대우증권이나 대우조선 등 대부분의 대우기업들은 미래가 밝은 기업들이므로
정부가 어느 정도의 의지만 보여 준다면 외국 채권단들 역시 이같은 방법의
대우 구조조정에 동참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더욱이 각 계열사들이 독립적으로 설득력 있는 향후 구조조정 계획을 제시할
수 있다면 새로운 외국은행들로부터 추가적인 금융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사실 지금과 같이 국내 채권단들의 주도로 대우계열사들의 자산을 매각토록
한다는 것은 국부를 덤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며 헐값이라도 매각자체
가 쉽지 않아 시간만 끌게 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