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락기엔 원금 집착마라 ]

"원장님! 어떻게 하면 좋아요? 잘못하면 이혼해야 할 것 같아요. 해결방법
좀 알려주세요"

지난달 말 투자클리닉을 찾아온 40대 중반의 한 아주머니는 본전을 찾을 수
있도록 비법을 알려달라고 애원하듯 매달렸다.

가정주부인 전진영(44)씨는 슬하에 중학교 3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딸
을 두고 있다.

남편 엄주호(46)씨는 택시기사다.

IMF체제 이후 택시영업이 시원찮아졌고 그에 비례해 부인의 짜증도 쌓여만
갔다.

남편은 급기야 지난 7월부터 증권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게 화근이 됐다.

엄씨는 벌이가 전과 같지 않은데다 주위에서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소문에
귀가 솔깃해졌다.

증권사 객장을 수차례 기웃거렸다.

그간 한푼두푼 모아둔 예금을 찾고 은행 대출을 받아 7천만원 정도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주식에 관해선 왕초보인 엄씨는 객장에서 만난 경험있는 투자자의 의견과
정보에 의존해 처음 며칠간은 순조롭게 돈을 벌었다.

그러다 7월 중순께 매수한 주식이 급락해 열흘만에 2천만원의 평가손이
났다.

부인 전씨는 겁이 덜컥 나서 주식투자를 그만두라고 남편을 채근했다.

하지만 남편은 본전이 되기 전에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확고한 자세였다.

엄씨의 태도는 단호했다.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얘기는 전혀 듣고싶지 않은 듯했다.

내가 물었다.

"가령 저점이라고 생각해서 주식을 매입했는데 손실이 났을 경우 기다려서
다시 본전이 될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요?"

부부는 머뭇머뭇 하다가 "대부분 본전이 될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거의 95% 이상입니다. 단 죽기전
에 적어도 한번 올 확률이지요"라고 말했다.

본전심리의 밑바탕엔 기다리면 본전이 된다는 희망과 예상이 섞여 있다.

그러나 저가에 사서 가격이 내렸을 때 기다린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추세의 하락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금 상승추세로 전환해 원래 매수한 가격까지 오르는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겨우 본전을 넘으면 그간의 마음고생에서 벗어나려고 얼른 팔아 버리기
십상이다.

비로소 본격적인 상승추세로 접어드는 시점에 말이다.

본전심리의 또 다른 피해는 막대한 기회비용과 자신감 상실이다.

일찌감치 손절매를 하고 다른 종목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다.

장시간 평가손 상태에 있어 심리적으로도 매우 위축된다.

다음 매매에 악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왜 주식에서 잃을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자 엄씨의 얼굴엔 곤혼스러운
표정과 수긍의 고갯짓이 교차했다.

엄씨는 추세를 따르라는 처방까지 듣고나자 다소의 자신감을 얻은 듯했다.

주식을 그만두자는 부인의 의견과 남편의 본전심리가 앞으로 어떻게
타협점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추세를 따른다면 매매를 계속해도 큰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리란
기대와 부부싸움의 고비를 넘기게 해줬다는 보람으로 피로가 쌓이는 줄
몰랐다.

< 현대증권 투자클리닉 원장/한경머니 자문위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3일자 ).